서울남편광주아빠
[브로콜리너마저] 유자차 본문
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그만큼 달콤하지는 않지만 울지 않을 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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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중학교를 16바퀴 쉬지않고 뛰었다. 처음에는 3바퀴 정도 간단하게 걷다가 달리기로 바꿨다. 바꾸면서 핸드폰을 꺼내 '인디'라고 검색한 노래들을 틀어두었다. 처음 5바퀴까지는 조금 힘들었다. 허리가 조금 아팠고 숨이 차올라 박자에 맞게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10바퀴 정도를 채우면 이상하게 아픔이 가신다. 내리 6바퀴를 더 뛰었다. 시간은 30분이 지나 있었다.
몸이 힘들어지는 것과 다르게 생각은 바퀴 수에 따라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처음 5바퀴 정도 까지는 음악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음악의 가사들을 곱씹고 아는 노래는 조금 따라 불러보기도 하면서 뛴다. 그다음 10바퀴까지는 아내, 두 아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가족은 만어진다는 며칠 전 티비 방송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 또 내 곁을 떠난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다 현재의 나,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정도 생각했을 때 이어폰을 접고 핸드폰을 껐다. 마지막 6바퀴까지는 내가 뛰고 있는 이 운동장 곳곳을 보고, 바람소리와 멀리서 달려드는 새소리, 차가 달리는 소리, 경적 소리, 내 뜀소리들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앞에 걷고 있던 부부로 보이는 두명의 중년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분들을 지나치면서 혼자 두분은 무슨 애기를 하며 걷는걸까 상상했다. 그러다가 16바퀴를 마쳤다.
요새는 하루에 뒤끝이 많다. 일이 보람차지 않아설까? 밤이 되면 뭔가 찝찝하다. 그래서 요 근래 집 근처 중학교로 걸아가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풍족하지 못한 가족의 가장으로 내 벌이의 한계에 대한 고민,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 늘 생각만하는 소심함,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인지 올바른 육아에 대한 생각들로 뇌가 그레이색이 된다. 그래서 뛰게 된다. 뛸때만큼은 조금 생각이 줄어들기도 하고 약간은 후레쉬해지니까.
다시 집으로 걸어가는길에 늘 봤던 성당의 성모마리아상에서 멈췄다. 늘 늦은 시간까지 불이 밝혀진 그곳에, 그분 앞에 서볼 생각을 못했었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새 그 앞에 서있었다. 그분은 뱀을 밟고 맨발로 두손을 아래도 펼쳐보이고 계셨다. 두손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가족의 건강을 기도했다. 하루의 뒤끝이 조금 사라진것 같았다.
따뜻한 차가 한잔 마시고 싶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기에 또 여전히 추울 것이기에. 아내가 타주는 유자차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늘 그렇듯, 아내가 보고싶었다. 아이고. 마음이 시릴 때는 아내라는 유자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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