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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할머니는 꽃을 좋아했다. 사랑했다. 지금이야 아무도 살지 않기에 고향집 마당에는 억센 잡초들만 넘쳐나지만 잡초들을 유난히 싫어했던 당신께서 살아계셧을 적엔 마당은 잡초는 커녕 돌멩이하나 없이 깨끗했다. 네모난 마당 네 변에는 꽃을 안은 화분들이 가득했다. 철이 바뀔 때마다 피는 꽃들도 바뀌어 방안에 누워 문을 열면 겨울을 제외하곤 일년 내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름모를 선인장에도 할머니는 꽃을 피워냈고, 여닫을 때마다 삐그덕 거렸던 마당 앞 철문 옆에는 맨드라미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봉숭아, 채송화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텃밭 한 귀퉁이에서는 5월이면 박속처럼 하얀 꽃이 앵두나무 가지끝에 환하게 폈다. 모든 꽃들은 할머니의 손으로 피었다. 할머니는 때가 되면 가지를..
낙엽이 흔들리는 것에 시선을 두다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낙엽을 쓰고 싶었고 바람을 적고 싶었고 너른 평야와 산과 들, 광대무변한 바다를 옮기고 싶었던 내 글세계에서 나는 갓 태어나 옹알이도 어수룩한 핏덩이였다. 그저 하루를 적어 배설했고 그 내용과 구성의 조악함에 나는 매일을 좌절했다. 내가 본 것들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지, 아니 꼭 말 되어져야 하는데 왜 내 입은 묵언수행 부처처럼 열리지 않는 것인지. 머리가 빠지고 한숨이 깊어지고 발걸음은 무거워만 지는데, 내 머릿속 자판위에 먼지는 쌓여가는데 하릴없이 나는 그저 아득했고 내 풍경은 그저 무심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 두놈과 마주앉은 바람불어 코끝이 찡한 겨울 어느날, 우리는 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