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날지못하는 돌고래 본문
집으로 돌아와 늘 그랬던 것 처럼 바지를 벗고 빤쓰만 입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 갠 뒤라 날씨는 맑았고 볕은 따뜻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는 엄마가 해오던 부업 일감들이 난수처럼 어질러져있고 그리고 천정. 천정에는 날지 못하는 돌고래 한마리가 며칠째 그 자리에 떠있다. 코를 천정쪽으로 세우고 꼬리는 쇼파쪽으로 내린 파란 돌고래. 얼마전 조카와 나들이 갔던 어린이대공원에서 조카 손에 쥐어준 오천원짜리 돌고래. 녀석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새 공기들이 몸에서 많이 빠져나간 듯 꼬리부터 배 밑까지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있다. 날지못하는 돌고래 한마리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며칠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짬을 내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기 싫다하는 가슴의 손사래는 몸의 이끌림에 쉽사리 뭍혔고 눈을 떠보면 어느새 늦은 시간 포장마차 어느 한 구석이었다. 더이상 우울한 글따위를 끼적이고싶지 않아 앞으로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글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한달도 채 되지 않았다. 내 일상은 다시 우울해졌고 건조해졌으며 화장실바닥의 머리카락으로 가득찬 수채구멍처럼 먹먹해졌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어렵게 찾아간 대형서점의 진열된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책 속의 나열된 문자들이 어지럽게 읽히면서 작가의 말들의 객관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자신에 차있었고 나는 늘 그들의 자신감 밑에서 허우적댔다. 그렇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받아들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만들어진 객관성의 틀에 맞춰 나를 만들어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급히 커피전문점을 찾아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왕창 넣어 마셨다. 그날, 아무 책도 사지 못하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봄이라고, 날씨가 화창하다고, 감기 조심하라고, 다들 잘 지내고 있냐는 귀가길의 나의 시덥잖은 단체 안부문자에 다음과 같은 문자들이 배달되었다.
'그냥살아있어요..'
'와!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감기는 이미.. 선배도 조심하세요~'
'감기는 안걸리는데 수면병에 걸렸나봐요. 하루종일 의식이 없어요. 밥먹는 동안만 멀쩡한 듯'
'오라버니. 오늘 날씨 좋네요. 어머니는 좋아지셨나요?'
나는 문득 아직도 천정에 코박고 낮게 울고 있는 날지 못하는 돌고래가 생각났다. 녀석을 볼 때마다 나는 날려보내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후배들의 문자를 받고나서 거실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돌고래가 생각난 이유는 무엇인지. 다만 날지못하고 있는 내가 투영된 것인지. 자기아픔을 가지고 자기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어쩌면 늘 그렇게 날고 싶지만 중력으로 인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돌고래도 본디 사는 곳이 바다이니 바다로 찾아가라고 날려보내주어야 하는 것인지. 엄마는 내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고 했는데 그럼 나도 나를 저 돌고래와 함께 하늘로 날려보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파를 가로질러 집에 당도했을 때 돌고래를 아직도 거기 있었다. 날개짓하지 못하는 양팔의 바람이 빠져 어제보다 더 많이 접힌채. 거실에 밥상을 차리고 돌고래를 천정에 걸린 조기바라보듯 하며 밥을 먹었다. 녀석의 홀쭉해진 배를 바라보며 나는 밥상위의 반찬들을 각개전투 위장 속으로 밀어넣었고 뭉툭해진 콧대를 바라보며 킁킁 거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그렇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녀석은 얼마안가 죽고 말 것이다. 돌고래는 어쩔 수 없이 바다에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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