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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11시 40분.날씨 맑음. 본문

틈/사소한 것들

일요일. 저녁 11시 40분.날씨 맑음.

김윤후 2009. 6. 14. 23:58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나오는 티비 드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밑에서 엄마는 엎드려있었고 작은 숨소리로 보아하니 주무시고 계신 듯 했다. 이불을 베개삼아 다소곳하게 누워서 티비쪽으로 시선을 멈추었다. 내겐 감정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팬티한장만 걸치고 쇼파에 앉아 리모컨을 연신 눌러대고 있는 백수였다. 삶은 양 어깨에 귀신처럼 내려앉아 돌처럼 굳어버렸다. 길을 걷다가도 그 무게의 두려움으로 갑자기 멈춰스곤 했다. 생각없는 시간을 갉아먹다 무릎에 상처를 쳐다봤다. 딱지가 올라앉아 거추장스러운 상처는 세계지도처럼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냈다. 새살이 완전이 돋았는지 딱지는 손이가는 족족 허물처럼 벋겨졌다. 굳은 상처 벋겨내기에 서투를때는 쉽게 피를 보곤 했는데 지겨운 내 스물아홉해는 거추장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이겨낸다. 아픔없이 드러난 맨살이 나는 눈물겨웠다. 내 몸에 매일 피가 흐르고 의식하지 않아도 육체의 기능들이 제 곳에서 모두 힘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쳤다. 살아지지 않는 하루가 무심하게 채워지고 약이 없어도 가는 시간에서 나는 지쳐있었다. 생각없이 비가 내렸고 시선없이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있는 곳에 내가 없었고 무심함과 무참함, 바람의 빈정거림과 소리없는 질타가 악몽처럼 채워졌다. 정신이 이상했다.

 

  내 몸의 모든 피부에 딱지가 올라앉았다. 하지만 지금 긁어 떼어낼 수는 없다. 그 곳에 피가 숨어있다. 언제일까. 내 웃음이 진정 웃음이 되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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