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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엄마의 식탁

김윤후 2009. 7. 10. 12:47

 

엄마의 뒷모습. 강호영, 제 5회 일하는 사람 사진 공모전 출처

 

찌는 듯, 데우는 듯, 불타오르는 듯한 날씨가 다시 시작되려는 조짐인가보다. 새벽부터 빛의 뜨거움이 심상치 않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써 내 방까지 볕이 걸어들어와 있었다. '다시 푹푹 찔랑가보다' 어머니는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는 요즘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반바지를 입었음에도 땅을 차고 오르는 빗방울들이 바지를 적셨고 셔츠는 등에 찰싹 달라붙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거치적 거렸다. 비 내리는 소리가 비 흘러가는 소리로 들렸다. 잠수교는 전날 오전을 시작으로 물에 잠겼고 집 가까운 중랑천이 범람해서 동부간선은 통행금지였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서울은 물에 넘쳐 철철거렸고 나는 그 와중에서 학교에 간다고 집에서 제일 큰 우산을 펼쳐 들었다. 그랬던 기억이 바로 어제인데 오늘은 벌써 폭염이다. 심각한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지구는 점점 장년층으로 접어들어간다.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식탁에 아침을 차려놓으셨다. 간밤에 돼지 족을 푹 끓여 국물을 우려내시더니 그것으로 아욱국을 만드셨나보다. 풀린 된장의 진함과 돼지 족 국물의 뽀얀 칼칼함이 섞인 냄새였다. 못된 습성인지, 한국인의 어쩔 수 없는 식성인지 나는 아버지처럼 국이 없으면 좀처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없다. 국이 없다고 밥상을 밀쳐내는 불효자식은 아니지만 밥상에 국이 올라와 있지 않으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하다못해 찌개라도 올라와야 내 입안은 그제야 군침이 흐른다. 늘 국을 끓여야 하는 어머니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과 함께 하는 내 아침식사는 내게 언제나 하루의 큰 행복이다. 오늘은 아욱국이었다. 맛은 말해 무엇하랴. 우리 어머니는 전라도 토백이 부안장금이신데.

 곁가지로 딸려나온 밑반찬에 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밥상에 고기가 올라온다는 것은 전날 제사가 있었거나 큰 명절이었거나 아니면 큰누나 식구들이 놀러와 전날 밤 먹다 남은 고기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고기반찬을 '반찬'으로 먹어본 적이 없다. 고기는 언제나 우리집 가족 회식용이었고 몸보신용이었고 제삿거리용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별식처럼 해주시던 어머니의 자장면에서도 고기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우리집 식탁은 농촌을 닮아 '밭'이었고 '논'이었다. 사시사철 세가지 이상의 김치 - 김장김치, 겉절이, 파김치, 총각김치, 물김치(싱건지), 깻잎김치, 오이소박이, 고춧잎김치 등 샐 수없다. - 가 올라왔고 끼니마다 밭에서 공수해온 오이, 고추, 마늘, 마늘쫑, 상추, 깻잎, 호박잎 등 쌈과 쌈재료들이 상에 한 가득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먹고 왔으니 말 다했다. 철마다 올라오는 돗나물무침과 가지조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사리나물볶음과 도라지 볶음, 밥 비벼먹기 딱 좋은 무 생채지와 여름이면 빠지지 않는 얼음넣어 시원한 오이 냉채는 폭염 속에 위를 식혀줄 웰빙음식이었다. 내 29년을 살아오면서 늘 이렇게 먹어왔으니 '고기'를 특별식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끔씩 친구들 집에가서 식사할 때마다 나는 기름진 식탁을 보며 놀란다. 장조림과 햄 볶음, 불고기와 동그랑땡, 뜬금없이 올라온 잡채와 그 속의 넉넉한 돼지고기, 고기산적과 알이 도톰한 생선구이. 이 무슨 수라상인가. 나는 그 때마다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두 공기 이상의 밥을 먹어치운다. 언제 또 그런 고급, 고질, 고향(향기)의 식탁을 받아 보겠는가. 내집 식탁의 열악함을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내 유년기 부터의 식습관이 지금 내 몸에 벤 것처럼 이 친구들은 이런 식사로 어린시절을 지나왔겠다는 생각을 하면 의아하고 신기할 뿐이다. - 결단코 나는 어머니의 식탁앞에서 반찬투정을 해본 일이 한 번도 없다. 또 맛없는 음식이 식탁 위에 올라온 일도 본 적이 없다. - 그래서 내 친구들의 어머님들은 모두 나를 좋아하(실 것이)신다. 빈 밥 그릇에 밥알 한톨도 남긴적이 없으니까.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아욱국과 잘게 썬 감자볶음. 마른 김과 그제 담가서 막 익은 시원한 싱건지(전라도에서는 물김치를 싱건지라 부른다. 김치를 '지'라고 불렀으니 싱거운 김치라는 뜻일 게다.). 김장김치와 생 오이, 그리고 오이 장아찌.(이 오이장아찌가 오늘 좀 말썽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침밥상을 해치웠다. 여태껏 음식 문제로 탈이 났다거나 기름진 식사로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것은 모두 어머니의 푸른 들녘 식탁때문이다. 나물이나 김치, 밑반찬에 대한 내 감각이 다른 어른들보다 쉬이 뒤지지 않는 것도 다 어머니 덕택이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오면서 하나 재미있었던 사실은 내가 어머니가 만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 주변에서 얻어온 음식이거나 반찬가게에서 사온 음식 - 을 신접한 무당처럼 족족 집어내 구분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 음식에 익숙해진 내 또래들도 일정부분 공감할 얘기지만 나는 그 수준이 다르다. 지금껏 단 한번도 식탁 위의 '장난질'에 놀아난 적이 없었다. '장난질'이라 함은 내 이런 '어머니표 음식구분'의 까탈스러움을 눈치챈 작은누나와 큰누나의 '장난질'을 말한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젓가락을 대지도 않는 '우직함'에 놀란 누님들이 가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상에 올려놓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긴장된 촉수를 들이대며 족집게처럼 그녀들의 음식을 가려낸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는 거지 '누나들이 하는게 다 그렇지 뭐. 이거 누나가 했지?'

 오늘 아침의 오이지가 불쌍한 그 '장난질'의 대상이었다. 밥상 머리에 앉아 수저를 들고 밥을 뜨면 서 부터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번 먹자마자 나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소금기가 강하고 양념이 적으며 사이즈가 작음 오이를 썼다는 것에는 난 대번에 눈치를 '깠다'. 그리고는 다시는 손을 대지 않자 어머니가 부엌을 왔다갔다 하시더니 밥먹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왜 오이지는 안먹냐?' 하신다. 나는 '이거 엄마가 만든거 아니지?' 하였더니 어머니는 끝까지 자신이 만든 거라며 우기신다. 어림없는 소리. 내 29년 외길 '어머니표 음식' 인생에 이 따위 남의 음식이 들어오다니. 나는 웃으며 대문을 나섰고 그 순간 어머니는 자백하셨다. 간만에 아는 분한테 얻어온건데 너한테 한번 '장난질' 해본 거라며.

 가끔 식탁에서 진공청소기처럼 음식을 빨아드리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너, 난중에 결혼해서 니 마누라가 해준 음식이 요것보다 더 맛있다고 분명 내가 헌 것은 먹지도 않을 거야' 나는 말한다 '걱정마 엄마. 결혼할 사람 생기면 엄마한테 돈 주고 음식연수 보낼 테니까.' 애먼소리 한다시며 웃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찌는 듯한 더위를 예감하고 나는 싱건지를 통의 반이나 마시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집을 나왔다.

 밖을 나서면서 어머니의 손맛이 내 몸 가득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가. 내 미래의 마누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분명 '엄마맛'을 내 마누라에게 요구할 것 같다. 미안하다. 내 미래의 와이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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