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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불안한 청춘 영장이 나왔을 때 나는 숙취로 멍해진 두개골을 부여잡고 화장실 변기 앞에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이제는 더이상 찰 혀도 없다며 한 숨만 푹푹 쉬시고 계신 어머니가 김치콩나물국을 끓이고 계셨던 것 같다. 채 20평도 안되던 집에서는 당연히 비밀이 없었다. 어머니가 늘 거실에서 주무시기에 나는 끊긴 필름을 술집에 버려두고 새벽녘 요란스럽게 문을 열었고 다음날 눈을 떠보면 늘 김치콩나물국이 밥상위에 올라왔다. 나는 먹은 것이라고는 술과 물밖에 없었음에도 다음날 꼭 건더기 비슷한 것들을 변기로 쏟아내었다. 변기물 위에서 부유하는 기생충 비슷한 것들을 보며 나는 하루를 시작했고 비밀없는 집에서 한 번도 술마신 사실을 들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두 번의 연이은 학사경고를 비밀로 해오..
현장 고발 치터스 외국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용인즉 부부나 연인 중 한 사람이 상대방의 불륜을 의심해 의뢰를 하면 제작진은 거의 사설탐정과도 같은 집요함으로 파트너의 불륜 행각을 쫓고, 마침내 적발이 되면 증거 화면 등을 의뢰인에게 보여주며 확인을 시킨 후 함께 불륜 현장에 나타나 파트너를 엿 먹이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다. 물론 엿을 먹는 게 파트너만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땐 내용이 워낙 쇼팅해서 몇 번 챙겨 보다가 만날 똑같은 타령뿐이라 언젠가부터 보지 않았는데 어제 등장인물들이 다소 독특해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5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흑인 노인네로 다리를 절었고 아마도 일용직 노동자인 듯 싶었다. 그리고 그가 힘들게 일하며 돌..
알아. 내가 다 알아. 수학공식처럼 욀 수 있는 것들을 알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그다지 많은 앎의 리스트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우진이가 여자를 좋아하고(사실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거의 없지만) 명호는 자기 집에서 멀리 있는 사람과는 잘 사귀려 하지 않으며, 경훈이는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고 성수는 정에 파묻힐 정도로 오지랖이 넓다는 정도? 경험과 습득.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대체 어떤 근거로 그리 쉽게 상대방의 개인성을 판단해 버리는 것일까. 내가 너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곰곰히 고민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설명하기 힘든 일이며 알고 보면 사실 하나도 모를 수 있다는 관계의 부정이며 결국 결코 너를 안다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가족. 지극히..
무소유의 진리를 설파하시며 불교계 성인이셨던 법정스님이 지난 3월 입적하셨다. 나에게 큰 감흥은 없었다. 불일암에서 수도하시고 길상사 주지스님이셨다는 사실과 많은 책을 펴내셨다는 것은 흘러가는 말로 들어 알고 있었다. 불교계는 성철스님 입적 이후 가장 큰 이슈로 다루며 연일 법정스님의 그간 행적과 스님의 법문을 방송하며 추모의 뜻을 보였다. 공중파에서도 법정스님의 과거 방송내용 등을 짜깁기한 준비된 영상을 내보냈고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고난했던 과거와 중생들을 위한 잠언을 보고 들으며 감동했다. 나도 그 중 한 프로그램을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나는 늘 많은 돈을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왔다.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와 술을 사달라며 칭얼댈 때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정도 - 약 삼만원 가량..
성장소설을 좋아했다. 어느날엔가는 황석영작가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고나서 깊게 감동했었다. 박완서작가의 [그남자네집]도 사실 작가의 경험이라고 봐야 했기에 성장소설과 비슷한 류였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검은 구름이 심장을 가리는 것마냥 답답하고 초조했던 신경숙작가의 [외딴방] 역시 그녀의 과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마지막 장까지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상처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의 과거를 글로써 고백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 역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야 읽어줄 만한 글이 나온다는 애기를 듣고 내 가난했던 청춘을 옮겨 적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늘 웃음을 달고 다녔지만 가슴 한 켠에 시퍼런 칼날을 숨기고 다니던 그 시절의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
한 때, 시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한 곳만 보고 경쟁하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훗날 문학 소년으로 남고 싶어 늦은 저녁 학교 건물 5층 도서관 구석에서 좋아하던 시들을 필사했다. 스프링 연습장을 사고 예쁜 색연필이나 꾸미기 좋은 펜들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나면 종종 예쁘게 시를 적었다. 가끔 너무 자주 했다 싶은 축구가 술 취한 다음날의 반찬 처럼 텁텁해질 때, 교정 계단에 앉아 시를 소리내어 읽었다. 나는 내가 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시를 알고 있다는 말이 무척 건방져 보이지만 당시 시는 다른 아이들과 나를 구별지어주는 하나의 선이었다. 굵고 커서 넘볼 수 없이 견고한. 나는 아무에게도 시를 알고 있다고, 가끔이지만 쓰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써놓고 ..
집으로 돌아와 늘 그랬던 것 처럼 바지를 벗고 빤쓰만 입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 갠 뒤라 날씨는 맑았고 볕은 따뜻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는 엄마가 해오던 부업 일감들이 난수처럼 어질러져있고 그리고 천정. 천정에는 날지 못하는 돌고래 한마리가 며칠째 그 자리에 떠있다. 코를 천정쪽으로 세우고 꼬리는 쇼파쪽으로 내린 파란 돌고래. 얼마전 조카와 나들이 갔던 어린이대공원에서 조카 손에 쥐어준 오천원짜리 돌고래. 녀석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새 공기들이 몸에서 많이 빠져나간 듯 꼬리부터 배 밑까지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있다. 날지못하는 돌고래..
모두들 집으로 가버리고 나는 만지작 거릴 전화기도 없었다. 제도권을 저 혼자 뛰쳐나온 것 같은 무한자유와 넘치는 해방감으로 나는 한달만에 20만원이 넘는 통화를 해댔고 결국 어머니께 핸드폰을 압수당한 상태였다. 3월 말, 나는 역시나 늦은 달빛을 핑계삼아 집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그것말고도 핑계는 많았지만 분무처럼 뿌려진 달무리를 등지고선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장승앞에 서서 동기들을 부르고 싶었다. 터벅터벅 과방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울컥울컥 터지는 외로움에 늑골이 시려왔다. 하나의 무리에 속하지 못했던 나는 그 시절 본의 아니게 아웃사이더처럼 캠퍼스 언저리를 맴돌았고 날이 저물어 지칠 즈음 늘 과방에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숨가쁜 적막 속에서 과방문을 살짝 열..
빈방이 하나 있다. 다섯 식구 사는 집에, 그것도 가장 넓은 큰방이 사람하나 들이지 않은채 비어있다. 비우고 싶었던 것 도 아니었고 원래 비워져 있던 것 도 아닌데 그 방은 그렇게 비어있다. 그방의 주인은 진짜 우리 아빠였을까. 그 방의 주인은 그 방에서 한번도 주인행세하지 못했다. 늘 천정만 보고 있었고 빛을 보려고 혼자서 일어나 커튼을 치지도 못했다. 독립난방이 되는 요즈음, 따뜻한 거실과는 달리 그 방에는 온기하나 없다. 꽃피는 춘삼월이라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추위 속에서 그 방은 창문을 닫아놓아도 열린것 처럼 추웠다. 아버지는 그 가운데서 2년을 누워계셨다. 진정 아빠가 그 방의 주인이었을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무릎을 꿇고 아빠가 계셨던..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때린다 아빠를 때릴 때 내 손에는 우주의 기가 장전됐다 아구창을 날리던 그 때의 기억을 충분히 발라 허벅지에 엉덩이에 뺨에 가슴팍에 꽂을 때마다 신음했다 아빠는 좋아죽는 투로 아빠를 때린 것처럼 엄마를 때리고 싶었고 엄마를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누나를 때렸다 잠만자는 형에게도 날리고 싶은 마음은 아무려나 내게로 돌아왔다 때린다 나는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책밖으로 진리는 걸어나오지 않고 밤은 쉬이 아침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기다린적 없는 서른의 끓는 피가 식어 밥상앞에 묵사발로 올라올 때 나는 다시 내출혈의 아픔으로 뇌출혈의 아버지를 때린다 말라버린 거실의 나무들을 씹어먹으며 나는 도통 일어서질 않는 세월로 잠식된 아빠는 퀘퀘한 냄새로 하나의 별이 되고싶었을까 도망치는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