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한 때, 시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한 곳만 보고 경쟁하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훗날 문학 소년으로 남고 싶어 늦은 저녁 학교 건물 5층 도서관 구석에서 좋아하던 시들을 필사했다. 스프링 연습장을 사고 예쁜 색연필이나 꾸미기 좋은 펜들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나면 종종 예쁘게 시를 적었다. 가끔 너무 자주 했다 싶은 축구가 술 취한 다음날의 반찬 처럼 텁텁해질 때, 교정 계단에 앉아 시를 소리내어 읽었다. 나는 내가 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시를 알고 있다는 말이 무척 건방져 보이지만 당시 시는 다른 아이들과 나를 구별지어주는 하나의 선이었다. 굵고 커서 넘볼 수 없이 견고한. 나는 아무에게도 시를 알고 있다고, 가끔이지만 쓰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써놓고 ..
집으로 돌아와 늘 그랬던 것 처럼 바지를 벗고 빤쓰만 입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 갠 뒤라 날씨는 맑았고 볕은 따뜻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는 엄마가 해오던 부업 일감들이 난수처럼 어질러져있고 그리고 천정. 천정에는 날지 못하는 돌고래 한마리가 며칠째 그 자리에 떠있다. 코를 천정쪽으로 세우고 꼬리는 쇼파쪽으로 내린 파란 돌고래. 얼마전 조카와 나들이 갔던 어린이대공원에서 조카 손에 쥐어준 오천원짜리 돌고래. 녀석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새 공기들이 몸에서 많이 빠져나간 듯 꼬리부터 배 밑까지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있다. 날지못하는 돌고래..
모두들 집으로 가버리고 나는 만지작 거릴 전화기도 없었다. 제도권을 저 혼자 뛰쳐나온 것 같은 무한자유와 넘치는 해방감으로 나는 한달만에 20만원이 넘는 통화를 해댔고 결국 어머니께 핸드폰을 압수당한 상태였다. 3월 말, 나는 역시나 늦은 달빛을 핑계삼아 집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그것말고도 핑계는 많았지만 분무처럼 뿌려진 달무리를 등지고선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장승앞에 서서 동기들을 부르고 싶었다. 터벅터벅 과방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울컥울컥 터지는 외로움에 늑골이 시려왔다. 하나의 무리에 속하지 못했던 나는 그 시절 본의 아니게 아웃사이더처럼 캠퍼스 언저리를 맴돌았고 날이 저물어 지칠 즈음 늘 과방에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숨가쁜 적막 속에서 과방문을 살짝 열..
빈방이 하나 있다. 다섯 식구 사는 집에, 그것도 가장 넓은 큰방이 사람하나 들이지 않은채 비어있다. 비우고 싶었던 것 도 아니었고 원래 비워져 있던 것 도 아닌데 그 방은 그렇게 비어있다. 그방의 주인은 진짜 우리 아빠였을까. 그 방의 주인은 그 방에서 한번도 주인행세하지 못했다. 늘 천정만 보고 있었고 빛을 보려고 혼자서 일어나 커튼을 치지도 못했다. 독립난방이 되는 요즈음, 따뜻한 거실과는 달리 그 방에는 온기하나 없다. 꽃피는 춘삼월이라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추위 속에서 그 방은 창문을 닫아놓아도 열린것 처럼 추웠다. 아버지는 그 가운데서 2년을 누워계셨다. 진정 아빠가 그 방의 주인이었을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무릎을 꿇고 아빠가 계셨던..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때린다 아빠를 때릴 때 내 손에는 우주의 기가 장전됐다 아구창을 날리던 그 때의 기억을 충분히 발라 허벅지에 엉덩이에 뺨에 가슴팍에 꽂을 때마다 신음했다 아빠는 좋아죽는 투로 아빠를 때린 것처럼 엄마를 때리고 싶었고 엄마를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누나를 때렸다 잠만자는 형에게도 날리고 싶은 마음은 아무려나 내게로 돌아왔다 때린다 나는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책밖으로 진리는 걸어나오지 않고 밤은 쉬이 아침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기다린적 없는 서른의 끓는 피가 식어 밥상앞에 묵사발로 올라올 때 나는 다시 내출혈의 아픔으로 뇌출혈의 아버지를 때린다 말라버린 거실의 나무들을 씹어먹으며 나는 도통 일어서질 않는 세월로 잠식된 아빠는 퀘퀘한 냄새로 하나의 별이 되고싶었을까 도망치는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