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모든 사물은 상처다. 칠이 많이 벗겨진 개다리 소반, 이광기가 아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울고 있는 저 텔레비전, 회사를 퇴사하면서 구입한 엠피쓰리, 드럽게 새로 사고싶은 핸드폰, 상경하면서부터 우리 집 벽에서 재깍거리는 시계. 모든 게 전부 상처다. 아프고 쓰리고 눈물나고 아리고 모질다. 몇 해 살지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그 모든 사물이여. 그 때의 내 시간을 채워주었던 모든 이들이여. 사랑이여. 함께 했던 모든 사물들에 내려 앉아 있을 추억들이 모두 상처다. 나는 라면 냄비를 보면 제대 후 복학생으로 살았던 2005년 겨울이 생각난다. 내겐 같이 교정을 거닐 동기가 없었고 함께 추위를 이겨낼 여우목도리가 없었고 늦은 밤 밥상에 밥공기 같이 올릴 친구가 없었다. 북적거리는 24시간 식당..
할머니는 꽃을 좋아했다. 사랑했다. 지금이야 아무도 살지 않기에 고향집 마당에는 억센 잡초들만 넘쳐나지만 잡초들을 유난히 싫어했던 당신께서 살아계셧을 적엔 마당은 잡초는 커녕 돌멩이하나 없이 깨끗했다. 네모난 마당 네 변에는 꽃을 안은 화분들이 가득했다. 철이 바뀔 때마다 피는 꽃들도 바뀌어 방안에 누워 문을 열면 겨울을 제외하곤 일년 내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름모를 선인장에도 할머니는 꽃을 피워냈고, 여닫을 때마다 삐그덕 거렸던 마당 앞 철문 옆에는 맨드라미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봉숭아, 채송화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텃밭 한 귀퉁이에서는 5월이면 박속처럼 하얀 꽃이 앵두나무 가지끝에 환하게 폈다. 모든 꽃들은 할머니의 손으로 피었다. 할머니는 때가 되면 가지를..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우울할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 우울한 얘기나 하며 우울한 술잔을 들고 싶었다면 거짓일까?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오나미는 12월 25일이 무슨 날이냐는 한민관의 질문에 쿨하게 금요일? 하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한껏 우울해지고픈 마음에 술을 마시려 현관문을 열었다. 빌라 건물 밖으로 나가자 찬 바람이 가슴팍으로 달겨들었고 나는 평소처럼 아이팟을 꺼내 전원을 켰다. 루시드폴의 고등어다. 덕지덕지 껴있던 아버지 고환의 때를 미지근한 물을 부어가며 불릴 때 나는 미안하다고밖에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다. 목욕도 자주 못해드리는 나쁜아들. 미안해 아빠.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말라 비틀어진 눈곱과 그틈을 비집고 스며나오는 새로운 눈곱이 껴이었다. 아버지의 몸은..
늦은 밤, 달그닥 거리는 소리를 품은 거실 한쪽 구석에서 라면을 끓인다. 물이 끓으려 할 때쯤, 미리 썰어서 얼려놓은 청양고추 조금과 만두, 그리고 라면 스프와 야채가루를 넣는다. 물이 끓으면 라면을 넣고 더 팔팔 끓인다. 반찬은 총각김치. 시간은 12시를 넘고 있고 세상은 조용하다. 아버지 오줌통 한번 비워 드리고 잡은 젓가락. 김이 모락모락 어둠을 가르고 총각김치 한 입 베어물고 살짝 느낀 오한에 몸서리 친다. 바깥은 춥다. 담배연기처럼 나오는 입김을 뿜으며 오그라드는 몸뚱아리를 간신히 집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삶은 고단하고 처절했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그득했고 졸립고 멍한 삶의 단락들은 그 속에서 비벼져 버스는 복작스러웠다. 내 라면은 꿀떡꿀떡 잘도 목구멍을 타내려갔고 국물은 위장 한 가운데서 찰랑..
아빠가 만날 미안해. 삼시 세끼 밥을 위장으로 넘기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밥이나 반찬이나 국물이나 물이나 또는 숟가락, 젓가락인 줄 알고 있던 나는 입 속의 흰 옥수수들에 무감했다. 내가 맛있게 파김치를 밥 가득 뜬 숟가락 위로 얹고, 김이 몽글몽글 오르는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호호 불어재끼며, 이것저것 남은 반찬들을 큰 대접에 섞고 고추장 한 숟가락 퍼 넣고 오른손 왼손으로 비빌 때 우리 아버지는 바닥에 누워 간이 소변통 뚜껑을 열고 신음하며 오줌을 누었다. 오줌 색은 술을 들이부어 썩을대로 썩어버린 위장을 부여잡고 이른아침 변기 앞에서 토해내는 신물처럼 노랗고 냄새는 지독히도 독했다. 이동식 소변통은 며칠만 세척하지 않아도 오줌 때가 더께처럼 통 바닥에 자리잡아 방 전체를 집어삼킬 듯 공기를 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