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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한 후배 녀석이 끝나버린 사랑에 코를 박고 울고 있어 슬프다. 녀석도 여자인지라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어찌할 방도를 몰라 짜증이 솟구친다. 얼마동안, 무작정 그녀를 이리 아프게하는 사람을 욕하고, 비난했으며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후에 만나게 되면 혼구녕을 내주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사람이 후배의 가슴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린 후였다. 깊은 뿌리는 밑둥을 잘라낸다고 죽지 않는다. 옮겨 심는 수밖에. 술 한잔에 눈물 한방울. 녀석 큰 눈에서 눈물이 소주잔으로 떨어질 때마다 나는 일회용 티슈를 몇장 끄집어 내 건냈다. 몇 번 접어서 우아하게 눈물을 찍어 내던 모습은 또 어찌나 우습던지. 그래도 아직은 어리고 귀여운 후배다. 내 잘못을 하나 말하고 용서를 구하자면...
김인숙 작가의 소개글은 이전 '우연' 평의 것으로 갈음한다. 솔직하다. 빠르다. 거침없다. 종이 이곳 저곳에 상처와 결핍이 스며있고 아픔에 시선을 던지지 않는 듯 하면서도 지독히 바라보는 치밀함. 김인숙의 장편소설 '우연'을 읽고 느꼈던 감정선들이다. 두번째다. 이번에는 '봉지'다. 그전에 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네모난 모판이 떠오른다. 오리가 넘는 하굣길을 걸어 집에 오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아빠는 일하러 나갔고 분명 누나들은 할머니와 밭에서 김매느라 땀범벅이었을 게다. 형은.....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나는 질경이를 뽑아 입에 물고 조물조물 씹어 단물을 짜내면서 엄마를 보러 갔다. 마을 시정을 지나 버스정류소가 있는 마을 외곽까지 걸어가면 동네 냇가 건너기..
장영희 에세이. ('에세이'란 단어가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지 잠깐 생각했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2003년에는 아버지 故 장왕록 교수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번역서로 [종이시계][살아있는 갈대][톰 소여의 모험][슬픈 카페의 노래][이름 없는 너에게]등 20여 편이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
서울역 그 식당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로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로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신경숙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내면, 욕망, 일상, 여성 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 자신의 존재를 쉬이 드러내지 못하는 미세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 그들의 흔들리는 내면에 대한 섬세한 성찰 등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집 [겨울 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방] [종소리], 장편 [깊은 슬픔] [외딴 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전2권)과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등을..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칼날과 사랑』『유리구두』『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와 장편소설『핏줄』『불꽃』『'79-'80 겨울에서 봄 사이』『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먼길』『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우연』등이 있다. 1995년 『먼 길』로 제2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0년 단편 「개교기념일」로 제 45회 현대문학상 수상 내가 신경숙 작가에게서 김인숙 작가에게로 시선이 옮겨 간 이유는 그다지 크지 않다. 신경숙작가의 『깊은 슬픔』을 읽을 즈음, 나는 애기능생활도서관 가..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보자면 자.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익숙해진 고통의 무게가 키큰 담벼락으로 서있는, 막다른 골목마다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걸려있고, 믿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현실에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는 미로가 아닐까.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함이 미로 속에 가득차있는 내 삶은 지금 막장일까.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즐거움이 많아 늘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평범한, 둥글게 살아가는 나는 지금 내 안에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찾을 기력을 소실했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그저 걷고 읽고 먹고 싸며 웃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착각했던..
감정이 힘겨울 때 발이 무거울 때 누군가에게 정신을 기대고 싶을 때 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보다 음악에 기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거 진부한 가사가 울컥 마음을 헤집어 놓는 건 내 처지가 슬퍼보여서 일까. 때론 음악이 어지렵혀진 감정선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한다. 김동률의 노래는 대표곡 이외에 많이 아는 곡이 없을 정도로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흔히 남자들의 로망으로 불러재껴지는 '취중진담'이나 최근에 알렉스가 불러서 좀 떴던 '아이처럼'이 내 수준이었다. 김동률 콘서트 앨범을 통으로 아이팟에 집어넣고 버려두고 있던 차에 '그건 말야'를 재생했다. 역시나 좀 울컥했다. 가사? 역시 진부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 삶도 지리멸렬한 것을. 보잘 것 없는 것을. 그냥 들어보자. 힘들어 하는 너에게 미..
사람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아 그들의 안부를 듣고 내 일상을 전할 때 그들은 내가 부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들이 전혀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당신들이 더 부럽다며 겸손을 부렸다.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부러워 한다는 사실이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기에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아 아무 부러울 것없는 내 삶을 추종하는 인사치레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 전화를 하거나 받는 일을 줄였다. 기실은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을 줄였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들은 내게 전화를 그다지 많이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시 핸드폰을 머물렀던 자리에 두고 장소를 옮겼다 되돌아 왔을 때마다 나는 ..
무너져 내린 하늘 구멍으로 연일 비가 쏟아진다. 비의 줄기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물 흘러가는 소리로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글을 쓰고 있는 여기서 밖을 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어딜 바삐 뛰어가는 지 작은 우산이 어울리지 않는 덩치 큰 사내가 내 시야를 가로질러 간다. 나는 책상으로 의자를 당겨 컴퓨터를 켰고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어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분위기는 꽤 좋았다. 비가 내리는 날의 나는 기분이 좋았던가. 어느날엔가 비 냄새가 진해 그것에 대해 썼던 기억이 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비 냄새. 향기라기보다 냄새라는 말이 적절했던. 바닥부터 들끓던 그 솟아오름이 좋아 나는 비가 오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그저 일없이 바라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