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칼날과 사랑』『유리구두』『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와 장편소설『핏줄』『불꽃』『'79-'80 겨울에서 봄 사이』『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먼길』『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우연』등이 있다. 1995년 『먼 길』로 제2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0년 단편 「개교기념일」로 제 45회 현대문학상 수상 내가 신경숙 작가에게서 김인숙 작가에게로 시선이 옮겨 간 이유는 그다지 크지 않다. 신경숙작가의 『깊은 슬픔』을 읽을 즈음, 나는 애기능생활도서관 가..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보자면 자.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익숙해진 고통의 무게가 키큰 담벼락으로 서있는, 막다른 골목마다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걸려있고, 믿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현실에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는 미로가 아닐까.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함이 미로 속에 가득차있는 내 삶은 지금 막장일까.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즐거움이 많아 늘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평범한, 둥글게 살아가는 나는 지금 내 안에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찾을 기력을 소실했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그저 걷고 읽고 먹고 싸며 웃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착각했던..
감정이 힘겨울 때 발이 무거울 때 누군가에게 정신을 기대고 싶을 때 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보다 음악에 기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거 진부한 가사가 울컥 마음을 헤집어 놓는 건 내 처지가 슬퍼보여서 일까. 때론 음악이 어지렵혀진 감정선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한다. 김동률의 노래는 대표곡 이외에 많이 아는 곡이 없을 정도로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흔히 남자들의 로망으로 불러재껴지는 '취중진담'이나 최근에 알렉스가 불러서 좀 떴던 '아이처럼'이 내 수준이었다. 김동률 콘서트 앨범을 통으로 아이팟에 집어넣고 버려두고 있던 차에 '그건 말야'를 재생했다. 역시나 좀 울컥했다. 가사? 역시 진부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 삶도 지리멸렬한 것을. 보잘 것 없는 것을. 그냥 들어보자. 힘들어 하는 너에게 미..
사람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아 그들의 안부를 듣고 내 일상을 전할 때 그들은 내가 부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들이 전혀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당신들이 더 부럽다며 겸손을 부렸다.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부러워 한다는 사실이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기에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아 아무 부러울 것없는 내 삶을 추종하는 인사치레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 전화를 하거나 받는 일을 줄였다. 기실은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을 줄였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들은 내게 전화를 그다지 많이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시 핸드폰을 머물렀던 자리에 두고 장소를 옮겼다 되돌아 왔을 때마다 나는 ..
무너져 내린 하늘 구멍으로 연일 비가 쏟아진다. 비의 줄기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물 흘러가는 소리로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글을 쓰고 있는 여기서 밖을 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어딜 바삐 뛰어가는 지 작은 우산이 어울리지 않는 덩치 큰 사내가 내 시야를 가로질러 간다. 나는 책상으로 의자를 당겨 컴퓨터를 켰고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어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분위기는 꽤 좋았다. 비가 내리는 날의 나는 기분이 좋았던가. 어느날엔가 비 냄새가 진해 그것에 대해 썼던 기억이 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비 냄새. 향기라기보다 냄새라는 말이 적절했던. 바닥부터 들끓던 그 솟아오름이 좋아 나는 비가 오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그저 일없이 바라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