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헛구역질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병에 걸렸나, 도 아니고 임신인가, 도 아니다. 개워낼 생각들이 뭉쳐있는 위장에 빨리 허기를 채워야 겠다, 라는 생각이 정답이다. 쑤시는 어깨와 저린 팔, 가뿐 호흡, 묵직해져 쑤셔오는 오른쪽 발바닥을 이끌고 도서관 문을 열며 불이 꺼져있는 도서관은 도서관 같이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헛구역질. 양 어깨를 드러내놓고 꽉 끼는 원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몇 보 뒤에서 바라보며 뛰어가 저 여자를 덮쳐버릴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헛구역질. 시내의 꺼져버린 가로등과 죽기살기로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들, 연신 수군대는 가로수 은행나무 사이를 걸으며 도로로 뛰어들면 어떨지 생각했다. 격한 헛구역질. 소리없는 눈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너를 위한 발걸음에 싼 값을 지불하마. ..
또 다시 신경숙이다. [외딴방][엄마를부탁해][깊은슬픔][리진]이후 다섯번째 작품. 외로울 때는 신경숙의 책을 보지 않는다는 한 독자의 이야기에 그 이유를 물으니 더욱더 외로워지기 때문이라는 신경숙의 글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뼈에 각인 될 깊은 절망의 기억이 눈을 멀게하고 귀를 멀게하고 나아가 기억 자체를 지워버릴 수도 있게 한다. 나 또한 그 시절의 기억이 또렷하게, 아니 희미하게라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그 시절 그 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것처럼 시간을 멀리뛰어버린 그런 기억들. 아프고 시리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되살아나주지 않는 생각의 뿌리들. 그 기억 속으로 걸어가는 신경숙의 언어들은 여전히 흐리고 멀겋다. 요즘에도 나는 오늘이, 그러니까..
그 남자는 끈질기게 자신이 지금 어디있는지 물었다. 내 멱살을 잡고 쥐고있는 손아귀의 힘을 더하면서도 그 남자는 끈질기게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 거냐고 외치듯 비명지르듯 따져 물었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간이역에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와 나 둘이 배경을 지키고 있었다. 세계의 어딘가에서 툭 하고 떨어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의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내게 자신의 현재를 물어오고 있는 것일까. 가을 비는 내리치는 속력을 더해가고 나는 심한 오한기에 몸을 떨었다. 주위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철로 곁에서 비맞으며 울고 있는 강아지풀과 역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덩쿨들, 그 사이사이 매달려 떨어질 기미로 벽을 붙잡고 있는 조롱박들이 을씨년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당황스..
많은 갈림길에서 오직 최악의 길만 골라 갈 때가 네게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서 12시까지 공부하고 2시까지 학원 위층 독서실에서 책보다 집에 오면 아버지는 늘 술에 잔뜩 취해 거실에 앉아계셨다. 불콰해진 얼굴로 전화기를 붙잡고 마구 욕을 해댔다. 누구일까. 아무튼 그분도 참 잘못 걸리신 날이다. 엄마는 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벽쪽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든척 하고 있었다. 가방을 방안 구석에 내려놓고 늦은 저녁을 먹으려 냉장고 문을 열면 채 치워지지 못하고 층층이 널부러져 있는 반찬그릇들이 보였다. 아. 또 엎으셨구나. 매번 엎어져도 상다리 한번 부러지지 않았던 우리집 밥상. 쉽게 부러질 것이었다면 아버지께서 밥상에 화풀이하지 않으셨을까.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그 새벽에 나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