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엄마의 뒷모습. 강호영, 제 5회 일하는 사람 사진 공모전 출처 찌는 듯, 데우는 듯, 불타오르는 듯한 날씨가 다시 시작되려는 조짐인가보다. 새벽부터 빛의 뜨거움이 심상치 않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써 내 방까지 볕이 걸어들어와 있었다. '다시 푹푹 찔랑가보다' 어머니는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는 요즘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반바지를 입었음에도 땅을 차고 오르는 빗방울들이 바지를 적셨고 셔츠는 등에 찰싹 달라붙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거치적 거렸다. 비 내리는 소리가 비 흘러가는 소리로 들렸다. 잠수교는 전날 오전을 시작으로 물에 잠겼고 집 가까운 중랑천이 범람해서 동부간선은 통행금지였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서울은 물에 넘쳐 철철거렸고 나는 그 와중에서 학교에 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왕자와 더불어 중고생 필독서로 불리는 책이었다. 어느해인가 책을 소개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추천도서로 꼽히는 운으로 대중들에게 더 친숙해진 책이기도 하다. 불규칙한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산성비 뒤집어쓰기 쉽상인 미친 날씨 속에서 난 쉽게 읽을만한 책을 원했다. 지금 읽고 있는 경제서적이나 김훈의 시론집은 땀으로 젖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끈적임을 참아가며 읽어볼만한 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어들었다. 애기능 생활과학도서관의 이 책을. "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야 실망도 안 하거든. 아기 예수도 사람들이나 신부님이나 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애는 아냐" 제제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해하고 있다. 알고 있다라는 것이나 이해하고 있다라는 것이 제제의 나..
살이 많이 빠진 너를 보면서 약간 안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분명 너는 너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네 정신적 고향의 향수는 서울에 뿌려져 있기에 '향수병'이 너를 그렇게 갉아먹은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와 경훈이와 함께 찾아간 조개구이집에서 넌 좀 쉽게 취했어. 경훈이는 새로운 연애에 대한 기대와 부푼 미래들로 연신 웃어댔고 난 그저 숨쉬고 있었던 것 같아. 그날 너는 평소와 달랐어. 네 머리카락은 해풍에 쉽게 흔들렸고 넌 날아가버릴 것 같았어. 내 안부를 물었고 넌 또 경훈이 안부를 거듭 물으면서 고개를 떨구었지. 수위가 높아졌던 대화는 기억나지? 성적인 대화조차 그전의 얘기에서 볼 수 없던 등급이었으니 나도 적잖이 당황했지. 난 울고 싶었어. 욘석. 많이 외로웠구나. 그날 집에서 넌..
균이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 전체에 퍼져 굳은살처럼 박혔다. 각질이 떨어져 나온 자라에서 벌건 핏기가 보였고 갈라진 마디에서 진물이 흘러나왔다. 양발 새끼발가락 사이가 특히 심했고 운신 중간중간 미칠듯한 간지러움으로 몸을 베베 꼬았다. 당장이라도 신발을 벗고 양말을 걷어 벅벅 긁고 싶었다. 긁어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무좀으로 인한 가려움으로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를 긁을 때에는 피가 나게 긁어도 가려움이 가라앉지 않았다. 피가 스며나오는 고통과 해소되지 않는 극한의 간지러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닿아 풀어지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서 가려움이 고통으로 변하고 유혈의 고통이 가려움으로 귀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풋크림을 잔뜩 쳐바르고 곳곳 스며들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마르지 않은 남은 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나오는 티비 드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밑에서 엄마는 엎드려있었고 작은 숨소리로 보아하니 주무시고 계신 듯 했다. 이불을 베개삼아 다소곳하게 누워서 티비쪽으로 시선을 멈추었다. 내겐 감정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팬티한장만 걸치고 쇼파에 앉아 리모컨을 연신 눌러대고 있는 백수였다. 삶은 양 어깨에 귀신처럼 내려앉아 돌처럼 굳어버렸다. 길을 걷다가도 그 무게의 두려움으로 갑자기 멈춰스곤 했다. 생각없는 시간을 갉아먹다 무릎에 상처를 쳐다봤다. 딱지가 올라앉아 거추장스러운 상처는 세계지도처럼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냈다. 새살이 완전이 돋았는지 딱지는 손이가는 족족 허물처럼 벋겨졌다. 굳은 상처 벋겨내기에 서투를때는 쉽게 피를 보곤 했는데 지겨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