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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녀석들에게

박우진

김윤후 2009. 6. 8. 16:50


고등학교 시절 나는 40%의 아웃사이더 기질과40%의 들이대기와 20%의 특이함으로 무장하고 있던 그저그런 어중이 떠중이중 한명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학교 성적은 벼락치기신공으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남다른 기초체력으로 하루종일 운동장을 뛰어댕겨도 이마에 송글거리는 땀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름 건장한 소년이었던게지. 1학년때는 어줍잖은 반 1등으로 선생님의 총애를 받았었고 나름 유들유들한 성격으로 원만한 친구들과 둥글게살아가고 있었다.

박우진. 이녀석과의 엿같은 인연은 그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녀석은 나의 절친한 초등학교 동창인 정충일, 이명호와 같은 반이었고-나중에 안 사실이지만-소문으로는 상위3%안에 든다는 부잣집 아들내미었다. 아마도 꽃가루 휘날리던 봄날 5교시가 끝날을 즈음의 시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점심시간이면 항상 남들보다 10초라도 먼저 축구공을 챙겨 운동장으로 날라갔고 고만고만한 아해들을 모아 두팀을 짜서 진짜 미친듯이 축구를 해댔다. 그날도 역시나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쓸때까지 운동장을 뒹굴었고, 5교시의 달콤한 수면을 위해 쳐진 어깨를 끌고 점심시간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교실로 향했었다. 엎드려 퍼질러 자던 중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지만 돈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지갑이라 별 중요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골아떨어졌다. 지금생각해보면 내가 지금다니는 학교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 사설이 존내 길다. 아무튼 5교시가 끝나고 지갑을 찾아가라는 교무실의 방송을 들은 친구녀석의 뒷통수 후려침때문에 잠에서 깨어났고 지갑을 주운 뒤 교무실에 갖다주고 나오는 우진이와 교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마주친것이 그녀석을 본 내 기억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생각해보니 10년이 지났다. 휴.

그녀석과의 셀수없는 에피소드를 모두 나열하자면 그 책 두께는 육법전서를 쌓아놓아도 따라갈수 없을 듯 하기에 이곳에 자잘히 써내려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녀석이 내 앞길의 어디에나 있을 것을 자부하고 나 역시 그녀석의 미래 어느 한 공간에 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이렇게 몇글자 끼적인다. - 이녀석 말고도 평생을 함께할 우리 알콜러스들은 어찌나 인연이 기구하고 괴상망측한지. 썩을.

그녀석은 나에게 메탈리카의 공포적 전율과 판테라의 초인적 강렬함을 전송해주었고, 신문명의 시작을 보여주었으며(핸드폰-_-), 어설픈 스터디 그룹의 부주장이었고, 수능한달신공으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할뻔한 그런 놈이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녀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니가 대학가서 술, 담배 안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쌍팔년도식 내기를 했다. 결국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생매장을 밥먹듯 할법한 학교에 들어와버렸고 그때부터 나와 이녀석과 다른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시작된다. 아아. 누가 우리보다 대학교 1학년을 알차고(?), 술맛나게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집은 술가게였고, 밥그릇은 투명한 소주잔이었으며 하루하루가 매일의 술안주였다.

이녀석과 나는 서로 터치하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민중을 알게되고, 학생운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어려운 이야기들, 정치적 이데올로기, 의식과 방법, 독서와 논쟁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녀석은 그런 방향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나역시 그쪽으로의 생각전환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시절 우리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떨쳐버릴수가 없다 

부자.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겠지. 고딩시절이나 지금이나 이녀석은 부자였다. 이녀석의 아버지가 부자인것과 지가 부자인것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따질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일정 나이를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그게 그거다. 안그런가? 아무튼. 부자라는 날카로운 타이틀은 그녀석과 나를 일정 간격을 두게하는 칸막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는 태생이 그러함을 티내지 않는 성격이라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부러워했음이 일견 사실이었고 훗날 집안문제로 이녀석이 잠깐 집을 나와있을때에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것 같다. 지금은 대가리도 굵었고, 생각의 방향을 가늠할만한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들을 많이 객관화시켰지만 말이다.

상대적 부자임을 내색하지 않는 녀석의 소탈함은 그녀석을 믿게 만드는 수많은 이유중에 하나일테다.

하아. 나는 어쩌자고 이런 카테고리를 만들었을까 하고싶은 얘기는 뇌용량을 초과하지만 이만 그녀석에대한 첫번째 이야기를 마쳐야겠다. 누가 여기까지 다 읽을것인가.-_- 다만 우진이와 나의 인연은 진행형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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