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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보자면 자.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익숙해진 고통의 무게가 키큰 담벼락으로 서있는, 막다른 골목마다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걸려있고, 믿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현실에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는 미로가 아닐까.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함이 미로 속에 가득차있는 내 삶은 지금 막장일까.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즐거움이 많아 늘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평범한, 둥글게 살아가는 나는 지금 내 안에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찾을 기력을 소실했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그저 걷고 읽고 먹고 싸며 웃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착각했던..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봉두난발로 TV스위치를 켜고 트렁크 팬티를 부비적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하러 내리는 가. 중력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고 땅 바닥으로 머리를 쳐박는 저 어리석은 몸짓. 나는 그 땅에서 뿌리 뽑힌 인생이었다. 누나의 빚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수치였다. 아니. 내가 헤아리면 안되는 숫자들이었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쓰나미처럼 밀려 올라왔다. 계산기의 부품들이 오류를 낸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눌렀다. 4년 전. 나는 밤샘의 시험공부 속에 시력을 잃어가고 책상 구석에 꾸벅꾸벅 이마를 찢고 있었다. 갑자기 어금니에 바늘이 꽃혔다. 2분 간격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꽃히고 나는 몸을 베베 꼬면서 신음했다. 굵은 소금으로..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나는 올라 타자마자 펼쳤고 읽어내려갔다. 날씨는 화창과 꿀꿀의 중간에서 멈춰있었다. 멋있는 녀석. 창 밖에도, 정면의 꽉 막힌 차들도, 기사님의 흥얼거리는 트로트도 모른채 활자에 정신을 모았다. 그의 시론에 빠져갈 때쯤 기사님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어어. 내 참. 저런건 안봐야되. 기사님은 햇빛가리게를 내려서 시야를 막았고 나는 영문없이 정면을 바라봤다.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색 오토바이. 함께 묶여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오른편 시야에서 헬맷을 쓴 사람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의 뒤에는 버스가 멈춰 서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 거리며 갈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저사람 여러번 굴렀어. 살아는 있을랑가 몰라. 에이. 저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