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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회사 앞에서 술을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인생드라마를 꼽으라면 어떤 드라마가 생각나시나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떤 드라마를 얘기했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술자리의 다른 후배들도 아마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는 뭐였지? 한켠에 생각해두고 있었을 거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음악으로 주제를 옮겨가며 우리는 서로의 시선에 대해 긴 시간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술자리에 술이 주가 아니라 내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가된 것 같았다. 그런 술자리는 늘 뒤끝이 좋다. 그 사람의 생각을 저장해두게 된다. 그 사람 자체를 저장해두게 된다. 대학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을 텐데 요 근래부터 술자리가 꺼려진다. 늘 하던..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 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자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내의 부탁으로 아내가 민준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는 거 보다는 서울에서 아내와 민준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학동역에 내려서 아내와 민준이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요새는 민준이가 많이 생각나는데 요놈이 표정도 많아지고 옹알이도 많이해서 너무너무 귀여워 죽겠다. 아내가 민준이를 안고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걸 보니 자는 것 같았다. 보자기를 살짝 열어보니 잘랑말랑 눈을 뜨고 있었다. 아오. 귀여운 놈. 왜이리 예쁜지 2년 전 현준이가 너무 귀여웠던 그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아내에게 '내가 안을까?' 했다가 괜찮다고 해서 삐질 뻔했다. 쳇. 교육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준이가 조금 꽁알대는 것 같아 내가 '내가 민준이 안고..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내가 하고싶은 것에 대해 적었었다. 음악듣기를 좋아해 작곡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다. 기타를 조금 칠 줄은 알지만 그래도 고타로 오시오의 '황혼' 정도는 치고 싶었으며 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늦은 밤 페이스북에 버킷리스트를 적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몇명의 페친들이 그 글에 댓글을 달아줬다. 내게 댓글은 큰 감흥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서 그냥 대충읽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 아내도 그 글을 봤는지 대뜸 내게 물었다. 오빤 하고 싶은게 참 많구나. 말에 약간 뒤끝이 있는것 같아서 나도 얘기했다. 자기도 한번 하고 싶은거 한번 적어봐. 뭔가 작게나마 해소되는 느낌이야. 아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난 지금은..
시골 집에는 당연히 침대가 없었다. 침대에서 잔다는 건 티비에서도 못봤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도 나는 바닥에서 잤다. 시골집의 온돌같은 따뜻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온기있는 바닥에서 잤다. 아버지는 바닥에 호스가 있어서 그 속으로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바닥 온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바닥에 귀를 대고 누우면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의 세번째 집에서 아버지는 침대를 샀다. 물론 안방에는 안두셨다. 나와 형이 쓰는 조금 큰 사이즈 침대였는데 처음 침대에서 자던 날 굴러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거실로 나와서 바닥에서 잤던 기억. 침대에서 자던 초창기에는 허리가 자주 아팠다. 누군가는 바닥생활하던 사람이 침대에서 자면 겪는 습관통이라고 했다. 그치만 지금 생각해보면 몸으로 전해지..
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그만큼 달콤하지는 않지만 울지 않을 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 어제는 중학교를 16바퀴 쉬지않고 뛰었다. 처음에는 3바퀴 정도 간단하게 걷다가 달리기로 바꿨다. 바꾸면서 핸드폰을 꺼내 '인디'라고 검색한 노래들을 틀어두었다. 처음 5바퀴까지는 조금 힘들었다. 허리가 조금 아팠고 숨이 차..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2003년 6월 24일 흐림 요즘에는 새소리가 많이 들린다. 뻐꾹새 우는 소리는 늘 들어봐도 마음이 슬프다. 저녁에 솟종새 우는 소리가 들리면 처량한 생각에 잠을 설치고 아침 다섯 시 되면 꾀꼬리 우는 소리에 곤하게 자든 잠도 활짝 깬다. 곤히 자다가도 정신이 나는 것 같다. 앞마당가에 백합꽃이 봉오리가 생기더니 한 이십 일 정도 되니까 6월 20일부터 피기 시작하드니 오늘 사흘째 되니 다 활짝 피었다. 문열고 밖에 나가면 백합 냄새가 향이 너무 확 난다. 참 귀엽고 만져보고 싶다. 하얀 백합이 보기에도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 --------------------------------------------------------------------------..
현준이에게는 모든걸 다 얘기해야 한다. 잠시 눈을 돌리거나 당장 회피하기 위해 현준이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들켰을 때 현준이가 실망한 듯 자지러지게 울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또 언어 발달정도가 상상을 초월해서 내게 물어보는 수준이나 설명해주는 수준이 너무 높다. 그리고 상황에 대한 기억력도.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싶은 말들을 요새 폭풍 쏟아내고 있는 우리 현준이. 광주에 내려가 아내와 아이들과 주말을 보내고 올라가야 하는 날 나는 조금 안절부절 못한다. 현준아. 아빠 오늘 서울 가. 아빠! 오늘 서울에 가요? 응 아빠 오늘 서울에 가요. 아빠가 어제 얘기했죠? 응. 알아요. 그리고 나서 현준이의 표정은 시무룩. 잠깐이라지만 헤어진다는건 슬픈거구나. 현준이를 보면서 늘 느낀다. 아무튼. 가야..
현준이가 잘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와 티비를 틀었다. 건조기에서 마른 빨래를 꺼내 거실 한 가운데로 옮겨 놓고 자 이제. 빨래를 정리해볼까? 쉼호흡 하고 선풍기를 '약'으로 틀어놓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방안에서 현준이의 울음소리. 후다다닥 일어나 방문열어보니 현준이가 일어나 앉아 울고 있었다. 엄마. 엄마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고 있다. 현준이 깼구나? 엄마가 없어서 울었어? 아빠가 다시 왔어~ 현준이가 무서웠구나~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옆에 있을게. 현준이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눞혀 안아주었다. 조금 더 나오는 눈물을 닦아주는데도 조금씩 '식식'거리며 울음이 나오는지 현준이는 작게 '엄마. 엄마.' 거렸다. 다시 잠이 오는지 눈을 감고 내 품에 안겨서 조용해진 그 때. 품 속의 현준이..
아내가 서울에 있을 때 아침마다 바나나주스를 갈아줬다. 일어나서 씻고 집 밖을 나서기까지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 나는 그 사이에 뭘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침을 먹지 않았고 그래서 결혼할 때도 아내에게 아침같은건 만들어먹지 말자고 했다. 어느날부턴가 아내가 아침에 바나나 주스를 갈아주기 시작했다. 또 챙겨주는 건 잘 먹는 스타일이어서 좀 부대끼긴했지만 꿀꺽꿀꺽 마시고 출근했다. 자던 차림에 얼려두었던 바나나를 갈고 우유를 부은 후 꿀을 넣는 모습이 여간 예뻐보였다. 맛도 좋았고. 첫째녀석을 가지기 전부터 아내는 내 건강을 끔찍히 생각했는데 간에 좋다는 약들을 꼬박꼬박 챙겨주었고 광주에서 올라오는 도라지즙이며 배즙, 포도즙, 양파즙 등을 넉넉히 챙겨두고 때마다 마시게 해주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