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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녀석들에게

장진실

김윤후 2009. 6. 25. 14:19

살이 많이 빠진 너를 보면서 약간 안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분명 너는 너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네 정신적 고향의 향수는 서울에 뿌려져 있기에 '향수병'이 너를 그렇게 갉아먹은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와 경훈이와 함께 찾아간 조개구이집에서 넌 좀 쉽게 취했어. 경훈이는 새로운 연애에 대한 기대와 부푼 미래들로 연신 웃어댔고 난 그저 숨쉬고 있었던 것 같아. 그날 너는 평소와 달랐어. 네 머리카락은 해풍에 쉽게 흔들렸고 넌 날아가버릴 것 같았어. 내 안부를 물었고 넌 또 경훈이 안부를 거듭 물으면서 고개를 떨구었지. 수위가 높아졌던 대화는 기억나지? 성적인 대화조차 그전의 얘기에서 볼 수 없던 등급이었으니 나도 적잖이 당황했지. 난 울고 싶었어. 욘석. 많이 외로웠구나.

 

그날 집에서 넌 쉽게 잠들어버렸다. 경훈이는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멈춰놓곤 돌아올줄 몰랐고 난 니가 하는 꼴을 지켜봤단다. 니 집엔 니가 버려놓은 감정들이 도배되있었지. 침대 뒤 벽엔 네모난 그리움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있었고, 냉장고 안에서는 남루한 삶의 곤궁함이 썩어가고 있었어. 화장실엔 니 눈물방울이. 신발장엔 어두운 집에 홀로 들어설 네 서글픈 시선이 버려져 있었어. 진실아. 니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네 여성성을 내게 비출 때 난 조금은 슬프다. 네 가슴위로 드러난 속옷이나 네 말대로 작아진 가슴의 윤곽들이 문득 내 시야로 쓰러질 때, 난 니가 버릇처럼 넘겨버린 하루의 시간들이 느껴졌으니까. 라면을 끓여 늦은 밤 요기를 하고, 넌 잠이들고 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 속의 활자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주방으로 난 창으로 더욱 많은 별빛들이 들어와 네 방에서 놀다가길 기도했지. 그 빛의 자글거림으로 네가 조금 더 생기로와지길. 그런 생각을 했단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게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 너와 함께 우산을 쓰던 날의 추억이 생각나. 힘찬 빗방울이 떨어지고 널 바래다 주던 날, 내 흠뻑 젖은 한 쪽 어깨의 작은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 가 없다. - 그때,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야. 넌 그 날 아름다웠단다. 바닥을 차고 오르는 작은 빗방울 처럼 네 발걸음은 거침없었고 너의 숨소리는 시원한 바람 같았어. 긍정적인 웃음으로 가득 찼던 네 얼굴. 나는 그때가 기억나는구나.


 




사는건 무엇일까. 또 죽는건? 감정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란 또 뭐지? 난 말야 서른 즈음이 되니까 모든게 아련하게 잡히지 않아서 불안해. 확실했던 감정들에 휘둘리게 되고, 내안에서 틈이 걸어나와 사람을 밀어내기도 해. 무턱대로 눈물이 터져나오고 또 생각없이 시간을 버리기도하고. 언제나 넌 나와 티격태격했잖아. 내가 어떠냐고 물었지? 난 참 건조하단다. 넌 어떠니?

 

네게 사랑의 폭풍이 몰아칠 때 맞서려고 아둥바둥했던 그 밤들. 울며 새운 그날의 말들. 너와 마셨던 맥주에 담겼던 애잔함. 찬 바람과 미치도록 시리게 밝았던 둥근 달. 지나쳐간 사람들. 내가 모르는 네 친구들. 그때 그곳에 아직 모두 있을까?

 

오늘 내가 엄마한테 그랬지.

엄마. 죽으라는 법은 없나봐. 버스타고 학교로 오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젊은 놈이 창피하게 버스에서 울음 참느라 혼났다. 난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고 있어 진실아. 늘 좋은일만 있길 바라는건 불행을 뒤로 미뤄두는 짓같아서 그런말은 하지 않으마. 가끔 추억에 하늘한번 보기도 하고, 힘들면 예전처럼 울기도 하고, 또 좀더 서른답게 살아보기도 하자꾸나.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 글 보고 슬퍼하지마라.
슬퍼하지 않으려고 쓰는 글에 그런 악플을 달다니!

 

행복하게 지내. 진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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