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훈 (2)
서울남편광주아빠
현실은 늘 질척거린다. 진창 속에 발을 담그고 가뿐 숨을 쉬는 사람들은 오늘을 견뎌내기가 힘겹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죽어나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해는 뻘겋게 아가리를 벌리고 떠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그 발버둥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안쓰럽다. 말 되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말들이 해무海霧되어 그림자를 잠식하고 삶은 그 속에서 연명해 나간다. 나는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되어질 수 없는 것들을 말로써 잡아두려는 어중이다. 그러나 김훈의 글 속에서, 말들은 세계를 해체하고 날아가는 새들을 그저 풍경으로 놔두는 말들이었다. 하나마나 한 말들을 하면서 하나마나 한 삶을 노래하는 김훈의 언어들은 늘 나에게 무서운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의 문장들은 현실 속에 뿌..
어떤 새는 저녁무렵에 혼자서 바다로 나아간다. 가슴에 석양을 받으며 새는 캄캄해지는 수평선 쪽으로 날아간다. 혼자서 날아가는 새는 저 혼자서 바다 전체를 감당하려는 듯하다. 한 마리의 새는 바다 전체와 대치하고 있다. 한 마리의 개미 역시 그렇다. 개미 한 마리가 땅을 기어갈 때, 그 개미는 홀몸으로 땅 전체와 대치한다. 한 마리의 사슴이나 사자도 그러하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는 저 혼자서 이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한 마리는 외롭고 또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외로움은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혼자일 뿐이라는 운명을 일깨운다. 나는 혼자서 밤바다로 나아가는 새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새 또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