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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窓을 열고

흔들리는 도쿄

김윤후 2009. 6. 12. 22:37



 사실 도쿄가 어떤 도시일지는 가보지 않아서, 상상해보지 않아서, 간접경험조차 없어서 알수가 없었다. 예전 신주쿠의 맥도날드는 이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밑에 서면 2층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일본 여자들의 치마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겐 그처럼 일본은 야동천국, 우익토피아, 전범국가 정도로 남아있다. 동경대가 매우 유명하고 높은 대학순위에 랭크되있다는 사실도 추가하자.

 97학번 이대원 선배의 추천으로 그의 외장하드에 있던 흔들리는 도쿄를 보게되었다. 세 명의 명성높다는 감독이 만들어낸 옴니버스형식의 영화. 마지막 스토리가 봉준호감독 연출이었다. 사실 영화를 본 마지막에도 나는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애국적인 요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그래도 봉준호니까. 

 미셸 공드리의 첫 번째 스토리는 이렇지. <아키라와 히로코>의 히로코는 남자친구 아키라를따라 무작정 도쿄에 오게 된다. 도쿄에서 아키라의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며칠간 아키라와 히로코, 히로코 친구 셋이 함께 지내게 된다. 아키라는 겉으로 보기엔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아키라의 보잘 것 없는 영화는 정말 보잘 것 없다. 지방을 돌며 허름한 영화관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아키라와는 달리 히로코는 그저 남자친구를 따라다니며 영화상영을 돕는다.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 엄격한 도쿄의 주차단속은 그들의 자동차도 가져간다.



히로코는 자신에게 묻는다. '난 어떤 사람이지? 내가 할 줄 아는건 뭐지? 또 할 수 있는건?'. 히로코의 친구는 남자친구가 방문하는 날에도 같이 자야만 하는 히로코와 아키라가 불만 스럽다. 그러던 중 아키라의 영화가 상영되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다. 히로코의 친구는 아키라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고 '그저 아키라의 여자친구' 밖에 되지 않는 히로코는 힘들어 한다. 그 다음날, 히로코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 가슴에는 구멍이 뚤리고 다리는 얇아지면서 점차 의자로 변해가는 것이다. 남에 눈에 띄지 않으면 사람으로 움직일 수 없지만 누군가 보기만 하면 의자로 변해버린다. 아키라에게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서 히로코 아니 의자는 어느 남자의 집에 가게 되고 그 남자의 집에서 많은 일들을 해낸다. 남자의 기타연주를 위한 안식처가 되고, 아침을 먹는 장소가 된다. 그녀는 아키라에게 자신은 지금 잘 지낸다면서 편지를 하게 된다.

 히로코가 의자로 변하게 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다름아닌 의자라니. 능력자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의자의 가치는 무엇일까. 혼자서 잘난 세상은 없다는 것. 니가 밟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러한 사실들의 처음으로 돌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이 있었다는 것. 갑자기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쳐다보게 된다.

 두 번째 스토리.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광인>.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스토리는 꼭 보시길. 책읽기에 무심했던 시절,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이해하기 어려워 죽을 듯 머리를 긁던 시절이 떠올랐다. 난해해도 이렇게 난해할 수가. 늘 그렇듯 바쁜 도쿄. 맨홀 밑에서 사는 광인은 그날도 어김없이 맨홀 밑에서 뚜껑을 열고 나온다. 그는 눈동자가 희고 머리가 길고 꽃을 먹고 살며 행색은 분명 걸인이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누군가 신고를 하기 전에 다시 맨홀 밑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나중에는 맨홀 밑의 폭탄들을 가지고 나와 도쿄의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트린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고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된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같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프랑스의 변호사가 일본으로 오게되고 그는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와중에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를 구원해야 하며 그를 신으로 모셔야 한다는 사람들이 방송을 타게 된다. 결국 그는 사형 구형받고 교사로 죽게 된다. 목졸려 매달려 있던 그가 다시 눈을 뜨게 되고 잠시 후 그는 사라진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한 것일까.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인다. 나는 처음 그의 언어를 들었을 때 매우 우스웠다. 정말 재미있었다. 코미디의 한 장면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광인과 그 변호사가 그들의 언어로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도대체 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던 중에 이해할 수도 없는 이러한 광인을 신처럼 추종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또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광인은 나와, 아니 우리와 소통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름다움만 먹을 수 있었다. 누구도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그가 살고 있던 도쿄가  ,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가 기실은 광인의 상태는 아닐런지. 내 추측은 여기까지였다. 

 마지막 세번째 스토리. 봉준호 감독의 <히키코모리>. 히키코모리는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과 그러한 현상 모두를 일컫는 일본어이다. 11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히키코모리 카가와 테루유키. 그가 살고 있는 공간은 너무도 완벽하다.



 그에게는 전화와 매달 아버지로부터 전해지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다. 모든 생필품들이 군대식 표현으로 '각'을 잡힌채 진열되어 있고 그는 매일 책을 읽으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잠이든다. 그의 일상에는 어떤 충격도 변화도 없이 늘 한결 같은 하루만 존재한다. 매일, 매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배달품을 가져다 주는 배달원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 일상 속에서 어느날 그는 평소와 다른 피자배달원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녀의 한마디. '여긴 너무 완벽해' 그녀는 쓰러진다. 지진이 그 이유.
 

 아오이 유우가 그녀다. 그녀의 몸에는 버튼이 새겨져 있다. 지진으로 정신을 잃고 자신앞에 쓰러진 배달원을 그는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러다가 그녀 몸에 있는 버튼을 누르게 되고 그녀가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녀가 한말은. '버튼.. 눌렀어요?' 그녀는 그렇게 사라진다.

 그는 그녀가 너무 궁금하다. 그러던 중 다른 피자 배달원에게서 그녀가 히키코모리가 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11년만에 외출을 감행한다. 어찌할 줄 모르며 나온 세상. 그는 또한번 충격에 싸인다. 도쿄는 이미 히키코모리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도로에는 차도 없다. 배달도 로봇이 하고 있는 은둔자의 세상. 그는 혼란스러워진 정신으로 정처없이 달리다 그녀를 보게 된다. 그리고 또 지진. 사람들은 지진의 공포속에서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고. 지진이 멈춘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집으로 숨는다. 그녀 역시 집으로 가려 하지만 그가 외친다. '지금 들어가면 다시는 못나와요. 들어가지 말아요' 그녀는 완강히 거부하지만, 그는 그녀를 붙잡는다. 그러다 그는 그녀의 발에 새겨진 버튼을 누르게 된다. 'LOVE'라는 버튼을.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는 방법은 뭘까? 집 밖을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히키코모리이기를 포기하는 수 밖에. 내가 다가가는 수 밖에. 가장 희망적인 작품이었던 봉준호의 이야기는 역시 좋았다. 흔들리고 있는 도쿄를 위한 하나의 러브레터같은 영화였다.

 영화를 본 후 나는 줄곳 '흔들리는 서울'을 생각하고 있다. 죽음이 미화되고 진실이 썩어가는 세상. 무러뜯어 오르려는 인간탑에서 하수도로 흘러가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이해 받으려고만 하는 만남들.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랑의 난지도. 분명 서울도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서울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흔들리는 서울'에 보내는 러브레터 같은 영화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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