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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서울. 2009년 7월의 아침

김윤후 2009. 7. 23. 08:07

 

 

사람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아 그들의 안부를 듣고 내 일상을 전할 때 그들은 내가 부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들이 전혀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당신들이 더 부럽다며 겸손을 부렸다.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부러워 한다는 사실이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기에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아 아무 부러울 것없는 내 삶을 추종하는 인사치레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 전화를 하거나 받는 일을 줄였다. 기실은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을 줄였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들은 내게 전화를 그다지 많이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시 핸드폰을 머물렀던 자리에 두고 장소를 옮겼다 되돌아 왔을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핸드폰의 수신상태를 확인했고 전화기록도 문자 메시지 기록도 없는 핸드폰을 보며 일정의 안정감과 허무함을 씹어삼켰다. 나는 오늘도 하릴없이 신경숙 작가의 책을 옆에 끼고 버스에 올라타 버스카드를 찍고 맨 뒷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 뿐이었다. 막연히 리진의 일상을 따라갈 뿐이었다.

 개미는 혼자였다. 바닥을 뒤덮은 벽돌 블럭 사이에서 개미는 혼자였다.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들이 익숙한 나로서는 당황아닌 당황을 했다. 멈춰 선 내 왼쪽 발 밑으로 자꾸 기어들어오려 하는 것이 어줍잖아서 밟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잠시 들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발을 들어 그녀석을 보냈다. 동병상련의 기분은 아니었으나 오늘 따라 눈에 밟히는 개미의 형상은 위장에 허기를 더했다.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버스를 버리고 거리로 나간지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나는 개미때문에 멈춰서고 말았다. 개미새끼 때문에.

 맛있다고 소문났다고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 붙인 만두국집 간판을 지났고 줄지어 늘어선 한약방의 진한 한약냄새를 지나쳤다. 길거리에 먹다 버린 캔맥주가 나뒹굴었고 인도 중간중간 마을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 봉투가 널려있었다. 횡단보도 빨간불 앞에서 서있는 동안 스쳐가는 몇 대 안되는 자동차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맞은 편에 서있는 양복 상의를 입지않는 반팔 셔츠 차림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출근시간이나 약속시간에 늦었는지 차가 많지 않은 도로의 횡단보도 저편에서 그는 빨간불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할지 안 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발을 조금 구르다 그는 저편에서 이편으로 그냥 건너와버렸다. 나는 내 오른쪽을 통과하는 그를 살짝 흘겼고 그와 매우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의 눈빛은 읽어낼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는 복장으로 보나 목에 패용한 카드로 보나 여러모로  분명 직장인 같았고 나는 시간이 남아 철저히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무뢰한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버려버렸다.

 

안암오거리 초입에 들었을 때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였다. 내 걸음걸이는 조금 빨랐고 그들은 조금 느렸다. 그들 둘은 나란히 걷고 있었고 인도는 두 명이 나란히 걸을 경우 앞지를 틈이 없는 간격이었기에 나는 잠시 그들 뒤에서 그들의 속도에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내 앞에서 걷던 여자는 머리가 물에 젖어있었다. 왼손에는 목욕가방을 들고 있었고 헐렁한 흰 티셔츠에 아무렇게나 입고 나온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얘기는 나누지만 둘은 손은 잡고 걷지 않았다. 남자 역시 차려입고 나온 것이 아니라 막 집에서 나왔거나 그랬다가 지금 막 집에 들어가는 복장이었다. 오늘은 공일도 아닌데 이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목욕을 하고 온 것인가.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는 잡념을 버리고 나는 조금 폭이 넓어진 인도의 왼쪽으로 그들을 앞질러 앞으로 나왔다. 익숙한 거리, 안암오거리에 눈에 들어왔고 나는 횡단보도를 다시 건더 애기능 생활 과학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도착이었다.


 여기 까지 쓰는동안에도 길 못찾는 멍청한 갈색 개미 한마리가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헤메고 있다. 나는 두번 생각하지 않고 검지손가락으로 무참히 그녀석을 살해한 뒤 엄지와 검지로 두어번 짖이겨서 저리로 던져버렸다. 그래. 개미 따위 두번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정이입도 필요없고. 무슨 연유에서 인지 나는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컴퓨터를 켰고 무작정 자판을 두들겼다. 내 뒷목은 여전히 뻐근한 채로 묵직하게 굳어있었고 어깨는 여전히 마취가 방금 풀린 수술자국처럼 쿡쿡 쑤셔왔다.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있는 신체기관이 몇 안되는 저질바디를 이끌고 나는 요 며칠 정신 이상으로 붕뜬 기분으로 쏘다녔다.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만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오롯하게 남아있었다. 요사스런 감정에 뒤척여 잠을 설쳤고 그래서 오늘 아침도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야했다. 허기는 더욱 몰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문득 껴드는 생각들 때문에 하루이틀이 뭉게지는 일도 있다. 내 몸에 내린 이 설명할 수 없는 무게들은 나를 병약하게 했고 생각을 거칠게 했다.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심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오른쪽 발 복숭아 뼈 근처가 아려왔다. 글을 읽다가 나는 피로해 쉽게 누워버렸고 어김없이 선잠이 들었다 깨곤 했다. 운동부족인가. 나는 내 몸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단지 뭐라도 써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 오늘은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지금은 오전 8시. 허기를 채워야 겠다. 늘 느끼지만 폰트 10으로 지면을 채우기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폰트 10을 넘기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역시 무뢰한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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