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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삶의 미로

김윤후 2009. 8. 7. 20:45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보자면 자.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익숙해진 고통의 무게가 키큰 담벼락으로 서있는, 막다른 골목마다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걸려있고, 믿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현실에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는 미로가 아닐까.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함이 미로 속에 가득차있는 내 삶은 지금 막장일까.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즐거움이 많아 늘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평범한, 둥글게 살아가는 나는 지금 내 안에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찾을 기력을 소실했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그저 걷고 읽고 먹고 싸며 웃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착각했던 날들이 얼마였던가. 나는 미로 속 막장의 거울 속에 거지처럼 늘어진 어깨와 무당처럼 반쯤나간 정신으로 서있다. 등 돌리고 쓰러져 버린 미숙아. 삶이여. 젠장 내 길은 어디인 것인가.

 나는 죽음의 곁에서 돌아왔다. 나는 시체들을 밟고, 넘어서고, 발로 걷어차면서 죽음의 긴장을 견뎌내었고 다만 전진함으로 삶을 연장했다. 아침의 졸린 눈으로 비틀 거릴 때면 으레 25톤 덤프트럭이 무자비한 속도로 나를 스쳐갔고 나는 후폭풍에도 몸서리 쳐야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서 나는 넘어설 수 없는, 아니 넘어서면 안되는 곳의 인기척을 들으며 다만 나아갔다. 모든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강물 소리, 새 소리, 잡풀 뒤섞이는 소리, 행인들의 말 소리가 귀곡산장의 저승사자 울음처럼 기괴히 다가왔다. 나는 내 노랫소리로 그들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럴 수록 그들은 더욱 음흉한 파장을 만들어 냈다. 나는 무서움에 치를 떨었다. 그저 죽기 싫어 나는 걸었고, 도착했으며 다시 걸었다. 나의 5박 6일 도보여행 중 도보시간은 끔직했다. 나는 그 곳에서 살아돌아왔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현실은 참혹했다. 나는 변한 것 없이 변해있길 바랬고 나는 다시 삶의 미로 속으로 죽는 시늉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번 울고 싶었지만 울음이 터지질 않았고 터지지 않은 울음은 곪을 대로 곪아 생각신경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산 송장이었으며 자식들은 패륜아. 나는 다시 막장으로 내몰렸다. 갈 곳이 없다. 나는.


살아가는 이들이여.
때론, 죽고 싶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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