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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기다린다는 것

김윤후 2010. 3. 1. 19:52





 혼자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음을 즐기고 혼자 밥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가는 시간시간을 혼자 향유하고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면서 죽을 때까지 기억나지 않는 누구와 본적없는 풍경과 쉬지않은 공기와 맡지 않은 향기들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혼자 있을 때 누구에게라도 섬광처럼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도 기다림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기다림은 늘 외로움을 달고 온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 노을이 자리잡고 나면 나는 늘 철봉에서 내려와 집으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집까지 향한 길은 갈래길 없는 외길이었다. 길 양 옆으로 누런 벼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빛들을 뿌려댈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다림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잠시라도 멈추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코 끝이 찡하게 날려오는 먼 솔냄새와 간지러운 바람이 참기 힘들어 나는 늘 뛰고 또 뛰어서 집까지 갔다. 헐떡거리며 당도한 집 마루위에 가방을 던져버리고는 가쁜 숨을 내쉬기도 전에 힘껏 소리내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는 옆집 현철이네를 타 넘어가고 동네 한 가운데 시정을 휘감아 먼 앞산까지 날아갔지만 늘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슬펐다. 털썩 주저앉은 자리에서 나는 꼬리치며 달려오는 강아지 백화에게 돌맹이를 던졌다. 싫었다. 갑자기 명치 밑에서부터 불덩이 같은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턱을 치받으며 눈시울을 달궜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나는 울었다. 기다림이 슬퍼 늘 나는 엄마엄마하며 울었다. 집은 엄마였고 엄마는 집이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엄마를 기다린다는 것은 말도 안됐다. 나는 채 신발도 신지 않고서 엄마엄마 울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대문을 박차고 앞집 땡감나무를 지나 친구 형우네집을 건너서 나는 우리 논이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그때까지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가을의 절정에서 하늘은 높았고 늘 동네는 조용했다. 벼의 숨소리가, 흩뿌려놓은 노을의 형체가, 낮게 흐르는 개울의 속삭임이 왜 그리도 사무쳤었는지. 늘 그 시간, 그 장소에 엄마는 굽은 허리로 무언갈 하고 계셨다. 멀리서 엄마의 냄새가 날아들기 시작하면 나는 더 세차게 울었다. 엄마엄마엄마하며 엄마한테 달려갔다. 울면서 내가 한 말은 고작 엄마가 전부였지만 울때 엄마말고 필요한 말은 없었다. 논 쪽으로 깎여진 비탈면을 쓰러질 듯 엉덩이로 훑고 내려가 엄마한테 가면 엄마는 크게 안으며 왜 또 우냐고, 우리 새끼 왜 또 우냐고 등을 쓰다듬어주셨다. 엄마가 내 등을 만지면 이상하게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그렇게 나는 꼭 하루에 한번은 크게 울었다. 엄마품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그래서 울음이다. 누군가를 혹은 그 무언가를 기다리다 결국은 울고 만다. 끝내 다가오는 누군가와 결국 만나지는 무언가를 껴안고 엄마품속 그시절처럼 나는 울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 더욱 약해진 나는 그래서 울보가 됐다. 요새는 혼자있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결국 와버린 서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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