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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교통사고

김윤후 2009. 6. 8. 17:11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나는 올라 타자마자 펼쳤고 읽어내려갔다. 날씨는 화창과 꿀꿀의 중간에서 멈춰있었다. 멋있는 녀석. 창 밖에도, 정면의 꽉 막힌 차들도, 기사님의 흥얼거리는 트로트도 모른채 활자에 정신을 모았다. 그의 시론에 빠져갈 때쯤 기사님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어어. 내 참. 저런건 안봐야되. 기사님은 햇빛가리게를 내려서 시야를 막았고 나는 영문없이 정면을 바라봤다.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색 오토바이. 함께 묶여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오른편 시야에서 헬맷을 쓴 사람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의 뒤에는 버스가 멈춰 서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 거리며 갈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저사람 여러번 굴렀어. 살아는 있을랑가 몰라. 에이. 저런건 보면 안되. 빨리 가야지. 빨리 가고 싶어도 정지된 차들을 뚫고 갈 순 없을 터. 기사님은 못볼 걸 봤다는 투로 안절부절 가만있지 못했다.

순식간이었다. 내가 없는 공간에서 사람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나는 평소처럼 책을 보고 있었고 날씨는 무심하게 모두를 훑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다시 갈 길을 재촉했고 그를 막고 있던 버스는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그를 우회해서 배기가스를 뿜고 달려갔다. 횡단보도의 적색이 녹색으로 바뀌고 택시는 악셀을 밟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를 지나쳐, 아니 죽음을 지나쳐 또 삶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지쳐서 멍하게 수십초를 앉아있다 나는 그제서야 몸서리쳐지는 죽음의 허망함에 책을 덮었다. 그는 몇 살이었을까. 결혼은 했나. 아이는 있을까. 누가 신고는 해줬나. 경찰이 재빨이 왔줬을까. 죽지말고 제발 살아주었으면. 나는 초를 다투듯 솟아사는 생각들로 미칠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니 갑작스럽게 전시된 죽음. 그의 몸을 핧고 지나갔을 수많은 무심의 눈동자들. 거부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이기적인 삶에 대한 욕구.

택시에서 내릴 때쯤. 나는 그가 죽진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왼쪽 시야에서 그의 몸뚱아리가 벗어날 때쯤 미약했지만 작게나마 그의 뒤척이는 듯한 몸짓을 본 것같았기에 아직 그는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아. 나는 열심히 준비하면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삶에 도저해있는 죽음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삶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제기랄. 날씨는 더욱 좋아지고 있었다. 바람마져 상쾌했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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