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본문

틈/사소한 것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김윤후 2009. 6. 10. 17:05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봉두난발로 TV스위치를 켜고 트렁크 팬티를 부비적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하러 내리는 가. 중력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고 땅 바닥으로 머리를 쳐박는 저 어리석은 몸짓. 나는 그 땅에서 뿌리 뽑힌 인생이었다. 누나의 빚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수치였다. 아니. 내가 헤아리면 안되는 숫자들이었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쓰나미처럼 밀려 올라왔다. 계산기의 부품들이 오류를 낸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눌렀다. 4년 전. 나는 밤샘의 시험공부 속에 시력을 잃어가고 책상 구석에 꾸벅꾸벅 이마를 찢고 있었다. 갑자기 어금니에 바늘이 꽃혔다. 2분 간격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꽃히고 나는 몸을 베베 꼬면서 신음했다. 굵은 소금으로 상처를 문지르는 듯한 고통으로 시야가 흐려졌다. 안돼. 시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는 TV 속의 그 무엇에게도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모든 빗방울들이 내 가슴에 박히고, 내 뇌수에 박히고, 내 혈관에 박히는 상상으로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는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땅 속으로 스미는 호흡을 나는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고 나는 말라버려 미풍에도 바스라지는 고목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밭은 기침만 연신 뿜어댔다. 살아간다는 게, 살아 낸다는게 힘겨운 사투인 것은 익히 알았지만 창이 없는 내 창문에 내리는 저 빗방울은 너무 가혹했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 > 사소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좀  (0) 2009.06.15
일요일. 저녁 11시 40분.날씨 맑음.  (0) 2009.06.14
교통사고  (0) 2009.06.08
사랑한다고 말해봤니  (0) 2009.06.08
라면  (0) 2009.06.0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