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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본문

틈/사소한 것들

불면.

김윤후 2009. 11. 23. 14:49

 



 잠이 오지 않아 며칠 전 사두었던 도종환 시인의 시집을 펼쳐들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읽고 나서 왠지 시집으로는 졸음을 불러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 째 시를 읽으면서 나는 이미 시를 분석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시 속에서 내게로 던져지는 의미들에 대해 허공에 잡념을 섞어 스케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탁' 소리와 함께 시집을 접어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도종환 시인에게 별로 미안하지는 않았다. 습기가 없이 건조한 공기 속에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나는 창문을 열었다. 11월의 차가운 겨울 바람이 거리를 두고 멀리서 다가와 다시 멀리로 불려가길 반복 하면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니, 청명한 공기 속에서 다시 희미하게라도 남아있는 잠이 달아나버린다면 다신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창문으로 벽을 치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불을 끄고 어둠 속으로 내 공간이 잠겼을 때 나는 내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으로 머릿 속에 환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쉽고 빠르게 공기는 말라갔고 문 밖에서 움직이는 타인의 또각거림은 더욱 가깝게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아. 이 지독한 투면이여. 잠이 오지 않으면 머리는 늘 생각들을 토해내었고 나뒹구는 생각 속에서 나는 더욱 잠과 합일하지 못했다. 쉴새없이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며 하릴없이 누군가의 번호를 눌렀고 그럴 때마다 그 누군가는 내 앞에 환영처럼 나타나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른손으로 휘휘 저어 환영을  지워버리고 나는 다시 일어나 복도를 걷는다. 복도의 주인없는 불빛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어둠을 몰아낼 때 나는 '그래, 오늘도 밤은 길겠구나.' 아주 쉽게 체념했다. 운동장에서 공튀기는 사람,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학생, 각 방에서 수근대는 연인들의 몸 밖으로 소리는 새어나오지 못하고 순식간에 어둠에 묻혔고 나는 뒤따라오는 내 발소리와 함께 잠을 이기려 골몰했다. 다시 내 방 쇼파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머리맡에 그립고 외롭고 사무치는 기억들이 자꾸 뭉쳐저 뒷목에 묵직해졌다. 강도가 심해지는 밭은 기침으로 상체를 일으켜 허리를 숙이고 기침을 멈추려 크게 심호흡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와버렸다. 내 안의 소리는 없었고 어둠 속에서 눈물은 볼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때, 갑자기 우주의 길을 잃은 별 하나가 내 발밑으로 떨어져 눈물방울 위에서 폭죽처럼 빛났고 사방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 한없이 흰 빛의 대열 끝에서 사물은 하나 둘 씩 지워졌고 결국 내 발밑부터 머리 꼭대기까지도 이내 사라져버렸다. 잠시동안 정신을 잃은 것 같은 찰나의 시간 후, 눈을 뜨니 두시간이 지난 아침이었다. 눈물은 그 사이 말라있었고 어둠은 저 온곳으로 물러가 버린 이른 아침. 나는 두시간의 수면으로 오늘은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개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나는 오늘도 또 이렇게 힘들도록 투면해야 할 것인가. 찬 바람. 아직도 겨울은 길다.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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