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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만날 미안해. 본문

틈/사소한 것들

아빠가 만날 미안해.

김윤후 2009. 12. 10. 18:58

아빠가 만날 미안해.

 삼시 세끼 밥을 위장으로 넘기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밥이나 반찬이나 국물이나 물이나 또는 숟가락, 젓가락인 줄 알고 있던 나는 입 속의 흰 옥수수들에 무감했다. 내가 맛있게 파김치를 밥 가득 뜬 숟가락 위로 얹고, 김이 몽글몽글 오르는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호호 불어재끼며, 이것저것 남은 반찬들을 큰 대접에 섞고 고추장 한 숟가락 퍼 넣고 오른손 왼손으로 비빌 때 우리 아버지는 바닥에 누워 간이 소변통 뚜껑을 열고 신음하며 오줌을 누었다. 오줌 색은 술을 들이부어 썩을대로 썩어버린 위장을 부여잡고 이른아침 변기 앞에서 토해내는 신물처럼 노랗고 냄새는 지독히도 독했다. 이동식 소변통은 며칠만 세척하지 않아도 오줌 때가 더께처럼 통 바닥에 자리잡아 방 전체를 집어삼킬 듯 공기를 어지럽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제 쉴 집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은 사라졌고 배고픔에 잰 걸음으로 달려왔던 주린 위장에는 허기는 사라지고 메스꺼움이 들어찼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내 밥상을 차렸고 건강한 이로 밥을, 반찬을, 파김치를, 배추김치를 아귀아귀 씹어먹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방 한 쪽 모로 누워 신음했다. 나는 배불렀다. 산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듯했다. 아버지는 죽은것처럼 살아있었고 살았지만 죽어있었다.

 청소미화원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주름진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던 50대로 보이는 '우리 아버지'의 한 출연자는 그동안 자식들에게 자신이 쓰레기나 치우는 냄새나는 청소미화원임을 알리지 않아왔다는 말을 하며 눈을 쓸어내렸다. 밑에서 그의 얼굴을 잡은 카메라의 앵글 속에서 그의 턱 밑살은 내려앉았고 눈은 깊은 우물 속 비친 달처럼 웅숭깊었고 머리는 땀에 절은듯 젖어있었다. 자신이 하는일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연이어 나올 법하여 나는 미리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역시 아직 어린 자식새끼일 뿐 한치도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을 다음 장면 그 출연자의 말과 함께 처절히 느껴야 했다. 그는 말했다. 나를 창피하게 느끼는 것과 나를 무멸시 하는것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일에대한, 자신의 술주정에대한 어쩔 수 없는 자식의 도리일 뿐 자신은 그저 자신의 아들딸자식들이 학교에서 '왕따'나 당하지 않을까, 드럽고 냄새나고 허섭스런 직업을 가진 아비를 둔 자식이라고 이웃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 까, 그것이 걱정이라고. 이미 그의 눈에서는 마신 술의 애잔함이 물이 되어 그렁그렁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고 나는 그보다 먼저 맨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신동엽은 그의 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통화 내용 속에서 그의 딸은 의젓했다. '의젓하다'라는 말은 응당 그의 딸에게 붙여야할 서술어인듯 나는 그동안 나에게 가끔 날아왔던 '잘한다', '효자다', '의젓하다' 라는 말이 방향을 가슴으로 틀어 폐부를 찌르는 듯 하여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불효자다. 인터뷰 말미에 밝혀졌지만 그녀는 그의 손자(혹은 손녀)를 잉태한 상태였고 '부모'라는 빌어먹을 단어에 대해 조금씩 알아아고, 느껴가고 있는 것 같았다. - 결국 나는 미친듯이 효도를 하는 '척'해도 저기 저 누워있는 아버지와 무릎이 쑤셔 뒤뚱거리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오래도록 알 수 없을 것이다. - 신동엽과 그의 딸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깜짝 등장처럼 그가 그의 딸과 통화를 시도 했을 때 그가 처음 내 뱉은 말에 나는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세월 속에서 항상 짐처럼 가슴 한켠에 쌓아두었을, 말하지 못하고 늦은 밤 술기운에 집에 들어가 자고 있는 딸의 머리맡에나 두고 왔을 법한 말을 꺼내었다.











"아빠가..


만날..


미안해..."







 나는 울었다.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울었고 어쩔 수 없어 울었고 결국 꺼이꺼이 울었다. 그 말이, 그 말을 죄를 고하듯 내뱉는 그의 얼굴이, 그의 마음이 나를 아니 내 가슴을 미친듯이 쥐어짜내 눈물을 울컥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만날 미안할 수가 있었을까. 내 아버지의 입 속 이는 지진 속 무너져 내리는 빌딩의 그것처럼 입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더이상 쉬이 음식을 씹을 수 없었고 야위어 갔으며 잠 속으로만 파고들었다. 먹지 못하는 고통을 내 2m 옆에 두고 나는 음식을 미친 듯이 씹어먹었다. 아. 씨발. 나는 진정 불효자인가. '우리아버지'는 예전 '양심냉장고'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영희 PD의 일밤 복귀작이었다. 아무려나 나는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나를 울게해준 김영희PD가 고맙지는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불효도 운다고 해결되는 틀니도 운다고 해결되는 가난도 있을리가 만무했기에. 한동안 나는 그렇게 울었다.










P.S
결론지었다. 돈없으면 효도 못한다. 돈벌어서, 틀니 정도는 우습게 코방귀끼며 부모 입 속에 들여앉힐 수 있어야 그게 효도다. 효도는 돈이 있어야 한다. 우스운 결론인가. 절대 아니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책 속엔 틀니가 없었다. 젠장맞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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