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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우리가 녹는 온도 본문

책 생각

[정이현] 우리가 녹는 온도

김윤후 2018. 7. 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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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생활 속으로 돌입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범속한 일상들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학, 공동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그 세월의 더께 속에서, 실은 두 사람이 최초에 무척 특별한 감정으로 맺어졌던 관계임을 상기할 여력은 사라진다. 욕실의 타일 줄눈ㅇ 더러워지는 것처럼, 어떤 일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서서히 일어난다.

 

삶의 무게가 두 사람의 어깨에 고르게 배분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때론 내 어깨가 무겁다는 것보다 저 사람의 어깨가 나보다 가벼워 보인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낱낱이 기억할 여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커피와 뜨거운 커피 따위가 도무지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무엇이 치명적인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는 것인가를 누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깨 자주, 그 사소한, 커피의 온도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마다 혀끝의 온도가 다 다르다는 것에 대해. 한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고 위안을 주는 온도가 제각각이라면,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말고 단 한 사람쯤은 나만의 그 온도를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정이현. [우리가 녹는 온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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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생활 속의 일들은 굉장히 디테일하게 흘러간다.

기저귀 좀 갈아줘. 라는 말은

먼저 아이의 엉덩이를 살펴 쉬를 했는지 응아를 했는지 확인하고 나서 아이를 푹신한 곳에 눕힌다. 쉬를 했다면 아이 옷을 반만 벗기고 새 기저귀를  펼쳐 기저귀 아래에 대고 쉬아를 한 기저귀를 벗긴다. - 이 과정은 속도전이다. 새 기저귀를 아래에 대지 않고 기저귀를 갈면 새 기저귀를 펼쳐 준비하는 사이 아이가 이불에 쉬아를 한다. 당신은 공황에 빠질 것이다. - 새 기저귀를 입히고 사타구니가 접히지 않도록 손가락을 넣어 겹친 부분을 빼준다. 아직 끝난게 아니다. 아이가 누워 있는 동안 빼낸 기저귀를 방향을 확인해서 돌돌 말고 밴드를 붙여 동그랗게 만다. 쓰레기통에 버려준다.

를 포함하고 있다.

아이 씻기고 나왔어. 라는 말은

아이를 벗겨 씻기러 욕실에 먼저 들어가는. 으로 시작될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아이를 씻기고 나와서 할 일에 대한 준비가 먼저다. 아이를 닦고 덮어줄 큰 수건을 깔아두고 각종 로션류를 - 얼굴에 바를 로션, 몸에 바를 로션, 똥고와 피부 접힌 부위에 발라줄 로션 등 - 옆에 챙긴다. 갈아 줄 새 기저귀와 갈아입을 옷을 같이 준비한다. 머리말릴 때 쓸 드라이기를 콘센트에 꽂아 둔다. 아. 이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욕실에 물을 먼저 받아야 한다. 깜박했군. 온수를 틀어 적정높이로 맞춰 놓고 아이 바디워시, 작은 타올 등을 챙겨 둔다. 아이 씻길 준비가 끝났으면 그제야 아이 옷과 기저귀를 벗긴다. 아이를 안고 다리부터 아이욕조에 무작정 담그면 안된다. 얼굴을 먼저 씻겨야 한다. 얼굴을 씻길때는 아이 목 뒤를 왼손으로 잡고 온수에 젖은 타올로 얼굴 이마부터......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절대.

 

아내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자기야. 오늘 애 기저귀 갈고, 씻기고, 먹이느라 너무 힘들었어.

라고 애기한다면 적어도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그 모든일들의 디테일을 생각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작고 작은 일들을 넘겨 하루를 채웠을 아내의 고생을 절감해주어야 한다. 아내를 알아주고 아내의 하루를 생각해주고 아내의 일과의 디테일을 떠올려 줄 사람은 솔직히 남편밖에 없다. - 육아 동기들, 엄마, 주변 지인들이 정말 많이 알아 주겠지만 쓸모없다. 남편이 알아주는게 짱이다.

 그렇기에, 그렇게 해야만 하기에 남편은 육아를 해야 한다. 아내의 육아를 돕는 보조적인 입장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그 디테일을 겪어야 한다. 그 디테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생활' 이라는 작가의 표현에 남편, 아내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육아를 하며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낮에 밖에 나가 일하는 내가 저녁에 들어와 애까지 봐야해?' 였다. 논리적으로 1도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다.

 

아내와 나는 육아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 아내의 육아 얘기를 내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음에 나는 기쁘다. 아내의 무언가를 더 디테일하게 알고 알아주고 알아가려는 모습이 나는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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