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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詩가 있는 땅

[강윤후] 혼자먹는 밥

김윤후 2009. 6. 8. 16:38

 

 


 

혼자 먹는 밥

 

                              - 강윤후

거실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햇살이 어느결에

뒤걸음질쳐 베란다 바깥으로 물러난다 늦은 봄

허탕치듯 만발한 라일락은 이윽고

어둠을 불러모아 스스로 한 그루의 어둠이 되고 나는

태언하게 쌀을 씽어 안친다

손수 끼니를 짓는 일도 습관 들이기 나름이어서

그런 대로 견딜 만하지만 여전히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다

식구들이 둘러앉아야 비로소 풍성해지는 저녁식탁 그러나

아무리 잘 차린들 내 저녁식탁은 스산하기만 하여

여물을 씹듯 밥알을 우물거리며 게으르게 시간을 으깬다

함께 찌개를 뜨던 다른 숟가락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빈 교실처럼 조용한 나날이 식탁위를 흐르는데

가끔 먼 기억 어디선가 지금 행복하냐구 물어서

생각해 보면 내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

맥없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우물대던 입술이 문득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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