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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삼시세끼

김윤후 2011. 7. 15. 15:47

건설현장에서 토목 반장으로 십수년을 일 해오신 아버지는 가시기 몇일 전까지 꼭 삼시세끼를 챙겨드셨다. 반쯤 불에 그을린 듯 익은 얼굴을 하고 현장에서 돌아오실 때쯤 아버지는 오늘 하루 무진장 더워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것 같다며 늦은 저녁에도 두 공기씩 밥을 드셨다. 반주로 소주를 두 종이컵씩 들이키신 후 쇼파에 앉아 끝나가는 아홉시 뉴스를 붙잡고 코를 고셨다.  

다음날에도 아버지는 아침 해보다 먼저 눈을 떠 꼭 아침을 드시고 일을 나가셨다. 티비에선 여전히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여전히 이상고온을 예보하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버릇처럼 현관에서 아버지를 배웅하고 나면 나는 아침 먹는 걸 포기하고 한시간이나마 더 자려 고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그러고 다시 저녁이 되어야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밥 때만 되면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서도 '야! 야!' 나를 찾아 밥을 달라하셨다. 이가 다 빠져 좋아하시던 사골국을 넘기시지 못할 때도 왼손으로 밥 뜨는 시늉을 하시며 곰탕집에 가자고 나를 보채셨다.   

늦은 밤,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나는 아버지의 삼시세끼를 생각한다. 가난했을, 시린이를 참아내야 했을, 아무도 깨어있지 않아 쓸쓸했을 아버지의 아침, 점심, 저녁을 생각한다. 울컥울컥 치받는 그리움 비스무리한 것들을 꾹꾹 누르며 국밥을 뜨는 한 여름의 비오는 야밤. 멀리서 아버지 밥 드시는 소리가 빗소리로 내리고 있다. 밤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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