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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사소한 것들

기다려줘

김윤후 2011. 8. 29. 17:57

 


어머님. 지금 아버님 심장이 멎으셨어요~



위급한 상태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 함께 병원으로 와달라고 간호사가 말했을 때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보일 것도 같고 다시 사라질 것도 같던 아버지의 생을 향한 눈빛들.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후 눈을 뜨셨는지 계속 감고 계셨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환자실앞 의자를 붙여 만든 간이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나는 다만 기다려 달라고 아버지께 얘기했다. 막상 아버지께서 기다려주시면 뭐라 말을 할지, 뭘 해드려야 할지 나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때는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이중문이 열릴 때마다 중환자실 안쪽에 대고 지금은 아니라고, 나 아직 아빠한테 할 말이 많다고 힘껏 소리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날, 자정이 지나고 아버지는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셨다. 그 때 잠시, 난 심하게 헛구역질을 했던 것 같다. 장을 치르는 내내 나는 눈물을 숨겼다.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늦은밤 그녀와 커피를 한 잔 나누면서, 더운 날 그녀를 그림자가 더 많이 드리운 쪽으로 하고 걸어가면서, 서로가 먹고 싶은 걸 먹었으면 좋겠다고 점심 메뉴를 고르며 투정하면서,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는 그리움을 종이에 옮겨 적으면서, 그리고 언제든 통화를 마무리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나는 어느새부턴가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잘못한 일들이 많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그녀의 바램을 내가 마냥 미뤄두고 있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그녀는 미안해하지 않길 원했지만 해 줄 말이 많지 않았던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혼자 뚝방길을 걸으며 문득문득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보고싶은 마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전활걸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보고픔을 가라앉히고 나서 잠이 들면 나는 그녀꿈을 꿨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에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기다려주지 않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돌아서서 그녀에게는 긴 기다림을 말하는 내가 너무 이상해서 멍하니 서버렸던 서울의 곳곳.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그때그때. 그리고 그럴때마다 터지던 눈물. 무작정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닫아놓고 울면서 눈을 뜨면 그녀가 내 앞에 있길 바랬다 난. 그녀가 내 머리에 따뜻한 손을 얹고 몇 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입맞춰주길 기도했다. 그러고 앉아있길 몇 분. 화장실을 나오면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웃곤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그녀에게 피자를 배달하며 나는 또 미안해진다. 이 작은 조각에 감동했다며 나를 추켜세우는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나는 어쩌면 나쁜 남자친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는 모든 길과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 내 모든 노력의 끝에 그녀가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행복이지 않을까. 어딜가든 나는 세계의 끝에 와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생각에 하나를 더한다. 내가 가는 모든 세계의 끝에는 그녀가 있다고.



https://youtu.be/O4KZ0u46pTg
김광석. 기다려줘.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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