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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바나나주스

김윤후 2018. 8. 20. 00:25


아내가 서울에 있을 때
아침마다 바나나주스를 갈아줬다.
일어나서 씻고 집 밖을 나서기까지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 나는
그 사이에 뭘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침을 먹지 않았고 그래서
결혼할 때도 아내에게 아침같은건
만들어먹지 말자고 했다.

어느날부턴가 아내가
아침에 바나나 주스를 갈아주기 시작했다.
또 챙겨주는 건 잘 먹는 스타일이어서
좀 부대끼긴했지만 꿀꺽꿀꺽 마시고
출근했다.
자던 차림에 얼려두었던 바나나를 갈고
우유를 부은 후 꿀을 넣는 모습이
여간 예뻐보였다. 맛도 좋았고.

첫째녀석을 가지기 전부터 아내는
내 건강을 끔찍히 생각했는데
간에 좋다는 약들을 꼬박꼬박 챙겨주었고
광주에서 올라오는 도라지즙이며 배즙,
포도즙, 양파즙 등을 넉넉히 챙겨두고
때마다 마시게 해주었다.

지긋지긋했던 2013~15년동안의
술자리를 무탈하게 이겨냈던 건
아내의 극진한 '챙김' 때문이리라.

그러던 사이
둘째까지 낳고 육아에 전념하느라
아내 건강이 나빠졌다.
자주 코피를 흘리고
피부트러블에 심해진 변비까지.
한 눈에 봐도 결혼전보다
아내는 창백해졌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다보니
힘께있을 때보다 내가 챙겨줄 수가 없어
전화기 너머 아내의 피곤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

함께있을 때
아내의 팔뚝, 종아리, 옆구리 곳곳을
조물조물하는게 내 버릇이어서
그 핑계겸 자주 아내를 주물러주었다.
발바닥이며 종아리, 뒷목, 어깨, 날개죽지,
등과 척추뼈를 주물러주면 아내는
아프다고 하면서도 편안해했다.

광주에 내려가서 맞이하는 아침에도
아내는 이것 저것 갈아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했었던
아내 마사지를 못해주고 올라온 것 같아
또 미안해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해준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멍청한놈.

이렇게라도 다짐을 해야겠다.
다음주에 아내와 아이들과
짧게나마 휴가를 가는데
그 기간동안에라도
꼭 자기전 아내에게 마사지를 해주어야지.
아내의 몸을 주무르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그리고 체온을 느끼며 아내 냄새를 실컷 맡아야 겠다.

아내의 바나나주스가 그립다.
그리고
바나나 향보다 포근한
아내 냄새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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