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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되었으면 하는.

김윤후 2018. 10. 23. 01:29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내가 하고싶은 것에 대해 적었었다. 음악듣기를 좋아해 작곡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다. 기타를 조금 칠 줄은 알지만 그래도 고타로 오시오의 '황혼' 정도는 치고 싶었으며 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늦은 밤 페이스북에 버킷리스트를 적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몇명의 페친들이 그 글에 댓글을 달아줬다. 내게 댓글은 큰 감흥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서 그냥 대충읽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 아내도 그 글을 봤는지 대뜸 내게 물었다.

오빤 하고 싶은게 참 많구나.

말에 약간 뒤끝이 있는것 같아서 나도 얘기했다.

자기도 한번 하고 싶은거 한번 적어봐. 뭔가 작게나마 해소되는 느낌이야.

아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난 지금은. 밤새 깨지 않고 푹 자보는게 소원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아내는 무척 피곤하고 힘들었나보다. 현준이가 깨지 않고 푹 자게 된 후에 얼마 동안은 아내도 깨지않고 잘 수 있어너무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민준이 탓에 그나마도 힘들다. 내가 옆에 있었다면 아내의 잠을 지켜줄 수 있을테지만 그러지 못하니 아쉽고 또 미안하다. 너무 내 생각만하며 적은 배부른 글이었나. 하고 조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걸 들키기 싫었는지 아내에게 얘기했다.

알아. 자기야. 잠이 부족해서 자기 피부도 망가지고. 많이 힘들지? 미안해. 그런데 자기야 그래도 자기도 하고 싶은게 있지 않아? 그냥 막연하게 해보고 싶은거. 아주 사소한거라도 좋으니 그런걸 써보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아.

아내는 나지막히 얘기했다.

으응. 그럴지도 모르겠다~ 알았어 오빠~

 

아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나를 만나 현준이를 낳기 전까지 물리치료사로 쉼없이 일만 했다. 주말에는 알바를 했고 잠깐 쉬는 날에도 물리치료 관련 학회에 참석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환자를 매일매일 받아냈던 아내의 하루는 매우 지난했을 거다. 나와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았었을 때, 아내는 자기 일이 너무 싫다며 내게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주말에 아내가 알바하는 병원에 가서 도둑치료를 받으며 아내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는 아내의 푸념에 나는 한마디도 위로하기 힘들었다.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를 직접 봤기 때문에.

그래도. 한번 생각해본다. 아내에게 어울릴만한, 아내가 했으면 좋은 그런 일들. 작지만 그래도 아내가 하면 기분 좋아질 일들.

 

1. 수영하기

아내는 수영을 매우 잘한다. 예전 아내와 함께 워터파크에 간적이 있었다. 나는 물을 너무너무 무서워해서 들어가기 정말 싫어하지만 꾹 참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수영모를 쓰고 실내 풀 앞에서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직 아내가 수영선수처럼 양 손을 앞으로 모으고 멋지게 제자리 점프해서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들어가는데 정말 멋있었다. 잠깐 멍해져서 그걸 바라보고 있었을 정도로. 너무 멋있어서 말이 안나왔었다. 그렇게 들어가서는 잠영으로 물개처럼 수영을 했다. 그 때의 아내는 정말 비늘만 없었지 인어공주 같았다.

 

2. 쇼핑하기

난 정말 쇼핑에 관심이 없다. 내 몸을 치장하는 것에는 1도 관심이 없어서 패션쪽으로는 완전 테러리스트다. 지금은 아내가 그나마 내 패션을 싹 바꿔줘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아내와 함께아울렛이라도 가면 아내는 늘 매장안의 옷보다 상설 할인 매대나 외부 특가매대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비싼 것 보다는 저렴하면서 좋은 옷들을 콕콕 찾아낸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내게 미안함을 준다. 아내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옷을 보고 있는 아내를 이끌어 비싸고 더 좋은 옷을 사게 해주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예전에 큰맘 먹고 아내에게 원피스 쇼핑을 해준적있다. 사고 싶은 원피스를 맘껏 사라고 아내를 아울렛으로 데려갔다. 그날 아내는 너무 아름다웠다. 입어보는 원피스마다 모델같았다. 아내는 다리가 너무 예쁜데 그래서 그런지 발목에서 무릎정도까지 보이는 원피스나 치마를 입은 아내를 보면 골반이 간지러워지면서 무릎과 손에 힘이 빠질 것처럼 아찔해진다. 아내가 그 옷을 입고 약속장소에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는 상상을 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아내가 예쁘고 아름다운 옷을 맘껏 쇼핑했으면 좋겠다.

 

3. 카페에서 커피마시기

연애할 때 '뚜또'라는 자주 가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아내는 달달한 커피나 카라멜마끼아또를 시키곤 했다. 나는 아내가 뭔가 먹고 마실 때 얼굴 표정이 좋다. 귀엽게 웃으면서 맛있게 먹고 마시는 표정이 너무 좋아 내가 마시는 것도 멈추고 자주 쳐다보곤했다. 아내는 커피를 마시면서 늘 나의 '오늘'에 대해 물었다. 오늘 오빠는 어땠어? 로 시작하는 질문이 처음엔 너무 어색했지만 만나는 날이 길어질 수록 자세하게 내 하루를 얘기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 같아보이지만 너무 중요한 얘기들. 누구도 물어봐주지 않던 얘기를 아내와 나누면서 나는 아내가 내 얘기를 듣는 걸 너무 즐거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커피를 마실 때의 아내를 자주 봤으면 좋겠다.

 

4. 단둘이 펜션 가기

처음으로 아내와 1박2일을 보냈던 펜션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내와 놀러가기만 하면 늘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처음 갔던 펜션에서 아내는 내가 준비해간 양주를 몇잔 마시지도 않은 채 거실에서 뻗어 코를 골며 잤었다. 그런 아내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도 찍고 몰래 뽀뽀도 했다. 그리고 아내와 팔짱끼고 펜션 근처를 걸으며 다정하게 얘기 나눴던 추억들.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건 아내와 단 둘이 여행가는 것! 준비는 내가 다 하면 된다. 

 

5. 글 쓰기

예전 싸이월드에도 나는 20대의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참 많이도 적었었는데 아내는 그런 유치한 글들도 전부 읽어주며 멋지다고 칭찬해주었었다. 나야 뭐 여기저기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아내는 뭔가 쓰는 걸 매우 주저했다. 아내에게 편지를 써주면서도 내심 내게도 편지를 써주길 기대 했었는데 아내는 자주 써주지는 않았다. 아내의 첫 편지를 아직 기억하는데 볼펜으로 꾹꾹 눌러 나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써주었다. 맞춤법이라든지, 앞 뒤 문맥에 맞게 글을 쓰려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정펜으로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이 많이 보였다. 난 그게 너무 고맙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토록 좋은 글을 써준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으니. 난 아마,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는 한 구절만 적어서 줬어도 너무 행복했을 거다. 아내와 늦은 밤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다보면 아내는 참 말을 잘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잘 표현하는걸 알겠는데, 그래서인지 여러번 글을 적어보는게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추천했지만 아내는 그러지 못했다. 요 근래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두 아들의 사진과 함께 소식을 올려주고 있다. 나는 그것도 좋지만 아내의 생각을 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내가 내 마음을 알았으면.

 

깊어가는 밤. 시간은 새벽 한시 반. 아내는 현준, 민준이와 함께 자고 있겠지? 많은 포기하면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의 아내 승희. 아내가 하고 싶은 게 위에 하나도 없어서 '그건 내가 하고 싶은게 아냐 오빠. 난 OOO같은 걸 하고 싶다고!'라고 내 글에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아내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난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아내가 그 무언가를 하다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웃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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