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아내의 침대 본문

서울남편

아내의 침대

김윤후 2018. 10. 15. 23:21

 

 

시골 집에는 당연히 침대가 없었다. 침대에서 잔다는 건 티비에서도 못봤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도 나는 바닥에서 잤다. 시골집의 온돌같은 따뜻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온기있는 바닥에서 잤다. 아버지는 바닥에 호스가 있어서 그 속으로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바닥 온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바닥에 귀를 대고 누우면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의 세번째 집에서 아버지는 침대를 샀다. 물론 안방에는 안두셨다. 나와 형이 쓰는 조금 큰 사이즈 침대였는데 처음 침대에서 자던 날 굴러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거실로 나와서 바닥에서 잤던 기억. 침대에서 자던 초창기에는 허리가 자주 아팠다. 누군가는 바닥생활하던 사람이 침대에서 자면 겪는 습관통이라고 했다. 그치만 지금 생각해보면 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많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상하게 침대에서 자면 추웠다.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추웠다. 그래서 겨울에는 거의 거실에서 잤다. 그때만해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루 멀다하고 치열하게 다투실 때라 아버지는 항상 안방에서 주무시고 어머니는 거실에서 주무셨다. 그래서 거실 엄마 옆에 자리펴고 잘 때가 많았다. 그러면 금방 따뜻해져 푹 자곤 했다.

서울의 다섯번째 집에서는 아예 거실에서 살았다. 옥상 바로 밑 집이었는데 외풍이 심한 집이었다. 거실 바닥은 따뜻했지만 바닥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으면 콧잔등으로 찬바람이 쌩~ 지나갔다. 겨울엔 집에서도 하얀 입김이 나왔다. 그래도 바닥이 좋았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바닥에서 자며 출근했다.  

서울에서의 여섯번 째 집이 지금 어머니의 집이다. 다섯번 째 집에서 나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낙성대에 신혼집을 차렸다. 비록 15펴이 안되는 조금 오래된 빌라였지만 아내는 정말 멋드러지게 고쳐냈고 우리집은 매거진에도 나왔었다. 아내도 바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며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와 줄곧 바닥에 매트깔고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아내는 신혼집을 차릴 때 좋은 침대를 가지고 싶어했다. 난 아내와 함께 잘 수 있다면 옥상 맨바닥도 좋았기에 아내가 하자는대로 따랐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집에서 처음 아내와 침대에 누웠던 기억이 난다.

아내와 함께 침대생활을 하며 느낀 거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침대를 싫어하는게 아니었다는 거다. 난 침대를 싫어한 게 아니라 곁에 누가 없는게 싫었던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은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잠드는 걸 좋아한 것 같다. 우리집 침대에서 잘 때도 예전처럼 침대 자체는 그리 따뜻하지 않았지만 아내와 껴안고 자면서는 한 번도 춥다고 느껴본적이 없다. 아내의 살결은 정말 보드라운데 아내와 살을 맞대고 자면 너무 좋아하는 아내 살냄새와 함께 따뜻함이 온몸에 퍼졌다. 한 참 자다 아내가 다른쪽으로 돌아누워도 나는 아내 등쪽으로 바짝 붙어 자곤 했다. 예전 페이스북에는 주말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는 내자리가 아닌 아내가 누웠던 자리로 가서 한참을 더 잤던 기억을 적었었다.

주말부부가 되버린 지금 평일에는 아내없이 혼자 잔다 침대에서. 결혼하고 나서 침대에서 아내를 주물러주고, 함께 게임도 하고 책도 보던 침대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이제는 혼자 침대에 있고 싶지 않아졌다. 침대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알수 없는 뻐근함이 느껴졌다. 눈을 뜨는 아침마다 졸려서 침대에 오래 있기보다 얼른 일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거실에서 이거저거 전부 다 하고 딱 잠에 들어야 할 때만 침대로 간다. 요 며칠은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놓고 침대에 있지만. 그래서 내게는 침대는 곧 아내다.

사람마다 다 스타일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혼자 자는게 별로다. 누군가와 함께 자고 싶다. 결혼 전에는 엄마나 여자친구였겠지만 지금은 오직 한 사람 아내와 함께 자고 싶다. 또 어찌하다보니 침대 얘기로 시작해서 아내 얘기로 끝나는 글이 되버렸네. 혼자서 침대에서 지낸 시간들에 대해 쓰려다 결국은 또. 하루의 피로를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깔끔한 노곤함을 느끼며 침대로 향했을 때 침대 위에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의 살냄새를 맡으며 밤새 킁킁거리다 아내의 발밑에서 깨고 싶다. 이 작은 침대의 공간이 오늘 따라 너무 넓게 느껴진다. 젠장

'서울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가 되었으면 하는.  (1) 2018.10.23
아내의 바나나주스  (1) 2018.08.20
아내와의 뽀뽀  (0) 2018.07.27
아내. 고승희.  (1) 2018.07.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