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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바이올렛. 본문

틈/누군가의 한 소절

신경숙. 바이올렛.

김윤후 2009. 10. 27. 17:25




바이올렛. 제비꽃. 4 ~ %월에 자주색의 꽃이 잎 사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한 개씩 옆을 향하여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네이버에 바이올렛을 쳐보니 위와 같은 설명이 나왔지만 무슨 말인지 잡을 수 없이 희미했다. 그저 보라색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였다. 보라색.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것 같다. 난 보라색을 그다지 호감있어하지 않는다. 선홍보다 더 피의 본질을 담고 있는 빛깔이어서도 하고 동시에 짙은 블루의 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색이었다.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의 색이 보라색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너의 사랑 저편에 만발한 꽃의 색이 아닐까. 확실하게 잡을 수 없어 아득한 것들의 색이 나는 보라색이라고 여겼다.

서른을 앞두면서 나는 객관적인 나를 명명하려 매일을 허송세월했다. 매 시간 속에서 내가 내지르는 말이나 떠올리는 생각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지 잠자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듯 관조했다. 부정하고 밀쳐내고 지워버리면 진정 내가 쓰러져 있는 감옥속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의 틈새에서 자기연민은 싹트고 쇠약한 신체 곳곳에서는 그만 멈추라는 신호가 깜박였다. 나도모르게 나는 내가 거리를 두었던 바이올렛과 가까워져 있었고 그 짙은 내면에 스며들고 있었다.



오산이는 부족한 아이다. 태어나면서 부성을 품지 못했고 모성은 얼마안가 미역국과 굴비가 놓인 밥상과 함께 사라진다. 축복받지 못한 생에서 나를 알아줄 아이를 만나지만 금기 속에 갇히고 결핍된 감정들은 치유되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을 만나고 화원이라는 공간에서 치유를 얻어가던 중 바이올렛을 찍으러 화원에 들렀던 사진기자에게산이는 자신을 사랑해도 되냐는 고백을 받게 된다. 또 한번 자신을 알아봐줘서였을까? 그녀는 알지못한 감정에 긴 시간 힘들어하다 그에게 찾아가지만 그는 술김에 뱉어버린 그의 말과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다니는 회사 근처 놀이터에 그를 위해 심었던 바이올렛. 울음으로 뛰쳐나와 그녀는 놀이터를 찾아가지만 벌써 포크레인이 그녀의 바이올렛을 파헤쳐 묻어버렸다. 그녀는 포크레인에 몸을 날려 자해하게 되고 자신을 포크레인 안에 묻어 가두게된다.

신경숙의 '바이올렛' 줄거리이다.(줄거리를 써보는 것도 실로 오랫만이다.)

바이올렛은 흔희 피는 꽃이라 한다. 사람들은 귀하고 화려한 꽃에게 눈길을 주기 마련이기에 바이올렛은 주목받지 못하는 꽃이다. 꽃의 본성이 인간의 눈에 띄기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 쪽에서 생각하면 눈에 들어오지 못하는 꽃은 가치가 없는 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매우) 하지만 흔히 핀다고 생각하는 꽃일 수록,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삶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바라봐주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그 삶은 완전하지 못하다. 오산이의 경우라면 더욱. 그녀는 바이올렛 그 자체였다. 비바람에 잎이 떨어지고 꽃대가 부러지고 뿌리가 들썩이는 생의 가운데서 빛처럼 내려줄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는 바이올렛. 신경숙의 시선은 그곳에 머문다.

결국, 그녀에게로 왔던 시선의 기억은 온전히 그녀 안에서만 머문다. 그녀 안에서만 자라나고 그녀 안에서만 부딪치고 그녀 안에서만 안절부절못한다. 그녀에게 시선을 던진 남자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확인 한 순간 오산이는 끝내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에 끝없는 눈물을 쏟아내게 된다.



······
 강렬한 햇살과 푸른 식물들 속을 뚫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널찍한 방과 그 방에 널ㅉ기한 탁자를 가지고 싶은 꿈을 뚫고 시작되었던 예기치 않았던 남자에게로의 이끌림. 아무 연대감도 없는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은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이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는 가슴을 훑고 지나가던 상실감까지도 물리치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야생 미나리 군락지 앞에서의 남애와의 한순간도 물리치며, 텅 빈 공허의 자리를 자욱하게 메우며.
 그녀가 혼자서 쌓아올린 모래성은 조금 전 바로 눈앞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하고 묻는 그 남자의 한마디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


책을 전체에 흩어져 있는 주인공의 시선과 발자취를 쫒는 신경숙의 문체는 나를 매우 혼란하게 했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하는, 정처없는 지나침. 너무 많은 풍경들이 그려져 나는 읽는 내내 몽롱한 상태의 정신을 바짝 조이지 않으면 안돼었다. 결국 그녀의 소설을 통과해온 나는 '바이올렛'의 마지막이야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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