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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음표

루시드 폴. 고등어

김윤후 2009. 12. 25. 21:27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우울할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 우울한 얘기나 하며 우울한 술잔을 들고 싶었다면 거짓일까?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오나미는 12월 25일이 무슨 날이냐는 한민관의 질문에 쿨하게 금요일? 하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한껏 우울해지고픈 마음에 술을 마시려 현관문을 열었다. 빌라 건물 밖으로 나가자 찬 바람이 가슴팍으로 달겨들었고 나는 평소처럼 아이팟을 꺼내 전원을 켰다. 루시드폴의 고등어다.


 덕지덕지 껴있던 아버지 고환의 때를 미지근한 물을 부어가며 불릴 때 나는 미안하다고밖에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다. 목욕도 자주 못해드리는 나쁜아들. 미안해 아빠.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말라 비틀어진 눈곱과 그틈을 비집고 스며나오는 새로운 눈곱이 껴이었다. 아버지의 몸은 말라비틀어 갔지만 항상 오줌은 나왔고 식욕은 어김없이 찾아왔으며 눈을 뜨면 내일이었다. 그렇게 한회의 목욕이 독한 냄새와 딱딱해진 때를 남기고 끝났을 때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날, 크리스 마스 이브였다. 나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축복을. 빨간 덮개로 머리카락이 사라진 부분을 덮고 나온 평화방송의 한 신부는 무어라무어라 떠들어댔다. 바지를 갈아입다 말고 나는 티비속의 그 신부를 보면서 아버지의 틀니를 떠올렸다. 입을 벌릴 때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성모의 성스러움과 이땅으로 임하셔서 갖은 질곡과 수난 속에 그 능력을 보이시다 인간의 죄를 안고 하늘로 향하신 예수님에 대한 의미가 쏟아졌지만 나는 오직 그 신부의 하얀 치아에만 눈길이 갔다. 이는 그 뿌리를 굳건히 잇몸속에 내리고 있었고 나이에 맞지 않는 고른 잇바디가 훤하게 드러났다. 치약으로 갈려 맨들맨들해진 그의 치아를 보면서 치약은 이가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처방받는 약으로 알고 병원이라면 치를 떠는 아버지의 내려앉은 치아가 생각났다. 예수의 치아는 어땠을까? 그도 맛있게 음식을 씹어먹었을까? 민머리 신부의 설교는 멀고 아득해 내게 들리지 않았고 그가 말하는 예수의 언행은 티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의 이는 너무 희고 눈부셨다. 나는 울컥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로큰롤과 종교. 무엇이 먼저 사라질까? 당연히 종교. 나는 늘 그랬다.  

 케익을 들고 엄마한테 걸어가면서 나는 울었다. 모텔을 지나고 지나치는 차들을 뒤로하면서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렸고 또 참았다. 참아도 참아도 터지는 눈물을 엄마에게 보이기 싫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왼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공판장 건물에서 2층 노래방 간판을 보고 올라오라는 엄마와의 통화를 기억하면서 나는 시장골목을 가로질렀고 공판장앞에 당도했을 때는 완전히 울음을 그쳤다. 벌게진 두눈으로 엄마를 부르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오는 것을 느껴을까?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텅빈 건물을 크게 울렸고 나는 다가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힘을 다해 참아냈고 나는 엄마 손에 맛있는 케익을 들려주고 엄마를 꼭 안았다. 머쓱한지 엄마는 작게 '왜이려' 말했고 나는 '갈게' 하고 뒤돌아 곧장 밖으로 나와버렸다. 미치도록 추운 밤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맛있는 식탁에서도 우리 아빠는 고등어를 먹지 못했다. 자꾸 맛나게 고등어를 씹어넘기는 티비 속 그 신부가 떠올라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고등어는 별로가 됐다. 루시드 폴의 이도 튼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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