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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음표

기타의 추억

김윤후 2010. 4. 3. 20:58




 모두들 집으로 가버리고 나는 만지작 거릴 전화기도 없었다. 제도권을 저 혼자 뛰쳐나온 것 같은 무한자유와 넘치는 해방감으로 나는 한달만에 20만원이 넘는 통화를 해댔고 결국 어머니께 핸드폰을 압수당한 상태였다. 3월 말, 나는 역시나 늦은 달빛을 핑계삼아 집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그것말고도 핑계는 많았지만 분무처럼 뿌려진 달무리를 등지고선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장승앞에 서서 동기들을 부르고 싶었다. 터벅터벅 과방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울컥울컥 터지는 외로움에 늑골이 시려왔다. 하나의 무리에 속하지 못했던 나는 그 시절 본의 아니게 아웃사이더처럼 캠퍼스 언저리를 맴돌았고 날이 저물어 지칠 즈음 늘 과방에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숨가쁜 적막 속에서 과방문을 살짝 열었을 때, 나지막하게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공간에 존재하는 인기척으로 나는 잠깐 머뭇거렸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96학번 형우형이었다.

 형은 기타를 치고 있었다.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형은 내게 등만 보이며 기타를 치고 있었고 형의 오른쪽 책상 위엔 소주 한 병과 가슴을 열어재낀 새우깡이 놓여있었다. 하나의 현에서 하나의 음이 태어날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전율했다. 남녀간의 열기오른 정사를 훔쳐보는 것처럼 나는 가슴이 뛰었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때, 가슴벅찬 청춘을 보았고 절정에 오른 낭만을 느꼈다. 내게 기타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 후, 나는 독학으로 1년 넘게 기타를 쳤고 왼손가락 마디마디에 물집이 생기고 굳은살이 배겼다가 벗겨지기를 반복하면서 웬만한 노래는 악보만 있으면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MT기타 수준에서 더 나아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라는 세월이 책장 넘어가듯 멀어졌다. 아픈 몸을 이끌 고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구석에 놓여있는 클래식 기타 하나.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너무 일찍 늙어버린 젊은이들을 위한 긴 울림. 광석이 형과 현식이형, 안치환과 꽃다지. 수많은 이들의 음악 속에서 나는 기타음을 골라 들었고 가슴의 떨림과 공명되는 기타연주들을 들을 때면 눈물로 열광했다. - 사실, 지금 내가 듣는 음악의 대부분은 기타가 주된 악기로 사용된 것들이다. - 쇼파에 앉아 비스듬히 세워진 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코끗이 찌릿하고 울려왔다. 폼잡고 기타잡고 앉아서 익숙한 멜로디를 튕겨본다. 며칠밤을 새며 치고 또 쳤던 노래. 




젠장.
오늘은 잘 안되는 구나.
영상으로 대신한다.
1000회가 넘는 그의 공연 중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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