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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외. 석양을 등에지고 그림자를 밟다. 본문

틈/누군가의 한 소절

박완서 외. 석양을 등에지고 그림자를 밟다.

김윤후 2010. 4. 26. 14:15





 성장소설을 좋아했다. 어느날엔가는 황석영작가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고나서 깊게 감동했었다. 박완서작가의 [그남자네집]도 사실 작가의 경험이라고 봐야 했기에 성장소설과 비슷한 류였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검은 구름이 심장을 가리는 것마냥 답답하고 초조했던 신경숙작가의 [외딴방] 역시 그녀의 과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마지막 장까지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상처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의 과거를 글로써 고백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 역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야 읽어줄 만한 글이 나온다는 애기를 듣고 내 가난했던 청춘을 옮겨 적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늘 웃음을 달고 다녔지만 가슴 한 켠에 시퍼런 칼날을 숨기고 다니던 그 시절의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과 가난을 생각하면 도저히 자판을 누를 힘이 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내 청춘이 더 힘들었노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내 청춘은 그래서 불쌍하고 측은하다. 나는 아직 글빨도 미천하고 나이도 어중간한 위치라서인지 그 때의 선명했던 감정들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남이 써놓은 일기같은 자전 소설들이 나는 좋다. 작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 작가가 펴낸 책을 모두 읽지 않아도 되어서 이고, 아픔없는 과거 없듯 작가들의 확연한 아픔들에 내 아픔을 덮으며 나를 위로할 수 있어서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나는 몇의 사람과 책에서 위로를 받는다. 




 나도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송도나 서울 등 대처大處 나들이가 잫았다. 대처 나들이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에 매달리는 걸 할머니나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에선 거나한 약주 냄새와 함께 달콤하고도 상큼한 대처의 냄새가 났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던 냄새는 아마도 내가 최초로 감지한 세련의 예감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대처 나들이 아니라도 출타시는 사철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셨다. 대처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옷자락에서 술 냄새가 안 나는 적은 있어도 두루마기 주머니에서 미라사탕이 안 나온 적은 없었다. 훗날 서울 와서 알게 된건데 우리가 미라사탕이라고 부르던 것을 서울선 눈깔사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박완서 [석양을 등이제고 그림자를 밟다] 중에서

 내가 코찔질이 시골촌놈이었을 때 한번은 얼굴이 예쁘장하니 고와서 무척 좋아했던 고모님께서 바나나를 사들고 집에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버찌, 산딸기, 단감, 앵두, 살구 같은 과일 말고는 먹어볼 일이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지천으로 널려 있었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요렇게 까먹는 거라는 고모님의 말씀을 듣고 요상망측하게 생긴 그 '바나나'라는 과일을 까먹었다. 늘 먹어왔던 것들과는 달라서였을 까. 예견된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 날밤 복통으로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러야 했고 아침에는 똥도 잘 안나와서 며칠을 고생해야했다. 고모님은 그 이후에는 자몽을, 그 이후에는 오렌지를 가져오곤 했으나 나는 '바나나'에 질려서 고모가 사다주는 대처大處의 과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 든 탓에 의사도 더 이상 무슨 조치를 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진통제로 버티라는 처방 아닌 처방을 내린 상태였다. 빨리 죽고 싶을 뿐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제 와서 지난 세월을 어찌 이런 글 몇 줄로 갈무리 할 수 있으랴. 우리에게는 도저히 필설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전쟁, 전쟁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나라의 전쟁, 세계의 전쟁이었다면, 그에 따라 마음의 전쟁도 당연히 치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어릴 적의 바닥이 그와 같으니, 살아 있는 동안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나. 어머니와 함께 내 한계는 결정되어 있다.
윤후명 [모래의 시詩] 중에서

 지금은 우리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시는 말. 어서 빨리 죽고 싶다는 한숨섞인 토로. 서른을 이제 갓 넘기면서도 지랄맞게 힘들어하는 내가 그 말에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먹먹해지는 가슴을 남겨두고 나는 늘 그 때마다 밖으로 도망쳤다. 아버지가 죽는 다는 것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차오르는 불안감에 나는 늘 아버지를 뵈는게 힘들었다.



…… 그 무렵에 그는 이를테면 인생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여 인생 자체도 실망스러워진 것인지, 인생이 실망스러워서 그 자신에게도 실망감을 느끼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끝내 알지 못할 것이면서, 그래도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리고 끝내 알지 못할 것이면서, 그래도 인생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 어찌 우리가 인생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수시로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수철 [페스트에 걸린 남자] 중에서

 끝내 알지 못함을 알고 있음에도 사랑해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행로 앞에 나는 수천번 고개를 숙이고 허리가 꺾인다. 수시로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대목은 그래서 수시로 가슴을 찌른다.



 "이봐요 아가씨. 소설은 그냥 쓰는 게 아니에요."
 "……."
 "소설은 말이지…… 내 인생이 소설책 열 권인데……개 같은 인생이 소설책 백 권도 더 되는데…… 그걸 그냥 쓰면 안된다 이그요. 빌어먹을 기계로 우당탕탕 치는 것도 아니라 이그요. 소설이란 건 말이지, 이 해삼처럼, 있는 힘을 다해 딱딱 씹어 삼키는 거라 이그요. 이 해삼처럼……."
 그때 왈칵 울음이 솟구칠 것 같았다. …… 그렇다라도 쥐꼬리만 한 계집애 앞이었다. 이따위 계집애가 자신의 눈물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런데 소설을 쓴다고? 좆같이…… 네가 인생을 알아? 소설책 백 권짜리 인생을 네가 알아?
김인숙 [해삼의 맛] 중에서

 역시 김인숙의 글 답다. 좆같은 인생 기계로 툭탁 쳐서 만들어 내는게 소설이라면 나도 씨바 백권은 더 썼겠다 라고 슬쩍 공감해본다. 



박완서 이동하 윤후면 김채원 양귀자 최수철 김인숙 박성원 조경란
박완서 등 우리 시대 대표작가 9인의 자전소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내가 아는 작가는 몇 안되었다. 자전소설이라기에 집어들고 바로 계산했다. 결국, 계산한 값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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