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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너는 모른다. 본문

틈/누군가의 한 소절

정이현. 너는 모른다.

김윤후 2010. 5. 3. 18:41








알아. 내가 다 알아.



 수학공식처럼 욀 수 있는 것들을 알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그다지 많은 앎의 리스트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우진이가 여자를 좋아하고(사실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거의 없지만) 명호는 자기 집에서 멀리 있는 사람과는 잘 사귀려 하지 않으며, 경훈이는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고 성수는 정에 파묻힐 정도로 오지랖이 넓다는 정도? 경험과 습득.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대체 어떤 근거로 그리 쉽게 상대방의 개인성을 판단해 버리는 것일까. 내가 너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곰곰히 고민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설명하기 힘든 일이며 알고 보면 사실 하나도 모를 수 있다는 관계의 부정이며 결국 결코 너를 안다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가족. 지극히 비밀스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거실이라는 광장은 엄마의 1인 시위로 개점 휴업상태. 피로 이어진 끈끈히 유대관계. 나를 속속들이 알 것 같은 엄마와 아빠. 그 누구보다 나의 개인기와 개그에 열광하는 우리 누나들. 늘 급작스러운 형.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을까. 아니, 얼마나 서로를 밀어내고 있을까. 아니, 밀어당기고 밀어내지도 않으려고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작은 누나는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한뼘도 안되는 크기의 네모난 카드로 날려버렸고 형은 어디가 그리 아픈지 방안을 온통 파스냄새로 채워버리고 큰누나는 며칠째 엄마의 돈을 부치지 않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극히 비밀 스러운 공동체. 서로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면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알 수 없는 비밀의 틀 속에 갇힌 관계. 결국 다 알 수 없다 말해야 하는데도 아들이 엄마를,동생이 형 누나를 꼭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벽처럼 서있는 저 방문 안에서 가족은 매일 비밀을 생산하고 가공하여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거리를 만들어 낸다. 거리는 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져버린 틈도 마찬가지.





정이현. 너는 모른다.


 자기소개서의 성장과성 소개란에서 우리 가족은 늘 화목했다. 마치 '화목'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인 열광적인 신도들 처럼. 화목하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라는 믿음처럼 그렇게. 평균적인 사람들이 인식하는 '화목'이라는 단어의 습성으로 보면 우리가족은 '화목'하지 않았다. '화목'이라는 공을 가지고 벌어지는 치열한 축구경기에서 우리가족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한채 벌써 전반전을 치렀다. 그렇게 다 알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멀어진 관계 속에서 대화는 점점 지워지고 그 사이에 못된 침묵만 피워냈다. 무엇이 문제일까. 깊은 대화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다가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때문일까. 것도 아니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살만하다고 느끼길 원하는 되도 않는 자기 믿음 때문일까. 도대체 얼마나 알아야 가족일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불치병에 걸린 김희애가 그랬다.

 '아냐. 너는 몰라. 네가 어떻게 이 고통을 알아! 너는 내가 아닌데'

미치도록 진한 한방. 그래서 정이현. 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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