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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외. 대화. 본문

틈/누군가의 한 소절

피천득 외. 대화.

김윤후 2010. 4. 27. 19:33




 무소유의 진리를 설파하시며 불교계 성인이셨던 법정스님이 지난 3월 입적하셨다. 나에게 큰 감흥은 없었다. 불일암에서 수도하시고 길상사 주지스님이셨다는 사실과 많은 책을 펴내셨다는 것은 흘러가는 말로 들어 알고 있었다. 불교계는 성철스님 입적 이후 가장 큰 이슈로 다루며 연일 법정스님의 그간 행적과 스님의 법문을 방송하며 추모의 뜻을 보였다. 공중파에서도 법정스님의 과거 방송내용 등을 짜깁기한 준비된 영상을 내보냈고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고난했던 과거와 중생들을 위한 잠언을 보고 들으며 감동했다. 나도 그 중 한 프로그램을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나는 늘 많은 돈을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왔다.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와 술을 사달라며 칭얼댈 때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정도 - 약 삼만원 가량 - 의 돈만 지갑 속에 들어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록 내게는 많은 돈이 필요한 일들만 닥쳐왔다. 가지고 싶지 않지만 가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늘 갈팡질팡했다. 아버지의 병원비며 약값, 어머니의 병원비며 약값, 내 생활비, 집안 생활비 등은 견실한 벽돌처럼 차근차근 쌓여갔고 나는 그 속에서 늘 허우적댔다. 가질 수 밖에 없는 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시린 겨울비가 내렸고 내리자 마자 가슴을 얼렸다. 내게는 소유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해마다 사는 옷가지의 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으며 신발도 늘 하나만 신고 다니다가 헤지고 닳아 더이상 신을 수 없을 때만 새 신발을 사곤했다. 가꿀 줄 몰라 헤어제품은 당연히 없었고 반지나 시계, 목걸이나 귀걸이 등속의 치장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 소유욕이 강했다면 그것은 늘 책이었다. 읽지 않아도 책을 가지고 싶었고 많지 않아도 진열하고픈 책장을 가지고 싶어했다. 검소하다면 검소할 수 있는 생활패턴과 행동양식.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죄책감이나 반성 따위의 움츠려드는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의 불일암에서 기침 때문에 일찍 일어나 뜻하지 않은 새벽의 정취를 느꼈다며 기침에게 감사한다는 스님의 고백은 잔잔하게 가슴을 울렸다. 진정한 '무소유'란 무엇일까. 진정 속세에서 '무소유'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종교적 힘을 크게 빌리지 않는 한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무교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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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 선생님, 한달에 얼마 쓰시나요?
금아 : 한달에 15만 원 쓰는 데 그 중 5만원은 집사람에게 살림 값으로 주고, 5만 원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서영이에게 하는 전화 요금으로 나가고, 나머지 5만원은 예쁜 여성들과 하는 데이트 비용으로 쓴다. 사람이 너무 가난하면 안 되지만 적당히 가난하고 적당히 부자여야 해. 그래야 마음이 편하거든.

금아 피천득과 우암 김재순 선생과의 대화 중에서 


 요즘 사랑이 왜곡되는 건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저는 학생이었고, 우린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결혼했거든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요즘엔 고전 취급하며 묻어 버리는 것 같아요.
최인호

 글 쓰다 보면 그런 일이 있지요. 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하면 됩니다. 사실과 진실은 조금 다르지요. 그런데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절절한 것입니다. 진실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고 자기들 일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 아니겠어요. 진실에는 메아리가 있어요. 역사와 예술 작품이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입니다.
법정

 저는 작가로서 인정을 받은 부분도 있고 못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무서운 것은 작품의 일급 독자는 작가 자신이라는 점이에요. [자이언트]란 영화를 보면, 가난한 제임스 딘이 유전을 발견하잖아요. 그때 상대역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하죠.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요."
그러자 제임스 딘이 대꾸합니다.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겠지요."
숨이 막히게 멋진 대사 아닙니까.
최인호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법정

 그런데 현대인들은 갈수록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인간 자체는 고독한 존재인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똑같이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지요. 다만 현대인들이 갈수록 고독해지는 것은 광장에 나와 있기 때문이고 고독을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최인호

…… 동서고금의 위인들 생애를 보면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죽는 그날까지 탐구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일찌감치 틀에 갇힌 채 '내 나이가 벌써 불혹이구나' '고희인대'하는 생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포기합니다. 아인슈타인도 그런 말을 했지요? 어떤 천재도 자기 능력의 2퍼센트 밖에 쓰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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