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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퀴즈쇼. 본문

틈/누군가의 한 소절

김영하. 퀴즈쇼.

김윤후 2010. 5. 8. 02:29






불안한 청춘


 영장이 나왔을 때 나는 숙취로 멍해진 두개골을 부여잡고 화장실 변기 앞에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이제는 더이상 찰 혀도 없다며 한 숨만 푹푹 쉬시고 계신 어머니가 김치콩나물국을 끓이고 계셨던 것 같다. 채 20평도 안되던 집에서는 당연히 비밀이 없었다. 어머니가 늘 거실에서 주무시기에 나는 끊긴 필름을 술집에 버려두고 새벽녘 요란스럽게 문을 열었고 다음날 눈을 떠보면 늘 김치콩나물국이 밥상위에 올라왔다. 나는 먹은 것이라고는 술과 물밖에 없었음에도 다음날 꼭 건더기 비슷한 것들을 변기로 쏟아내었다. 변기물 위에서 부유하는 기생충 비슷한 것들을 보며 나는 하루를 시작했고 비밀없는 집에서 한 번도 술마신 사실을 들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두 번의 연이은 학사경고를 비밀로 해오던 참이었고 학교에는 매일 나갔지만 정해진 수업은 듣지 않고 늘 문캠에서 다른 강의를 듣고 다녔었다. 선배들의 권유로 학생운동에 뛰어들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당시 나는 북한이 너무 무서웠고 아직 사물의 이면을 살필만큼 깜냥이 큰 녀석도 아니었다. 목적없이 쫓아나가는 데모에 제대로 싫증나이었었고 소모임을 전전하며 얻어먹는 술에도 이골이 나있었다. 빌려다 놓은 책은 첫 장도 넘기지 못한 채라면 냄비 밑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었고 동기들의 전화는 무심히 쌩까주는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결국 왼쪽 가슴에 영장을 집어넣고 나의 살던 고향으로 도피아닌 도피를 해야 했다.


고향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제대로 된 고향하나 없어서 어쩌니 하는 표정으로 말없이 그 앞에 술잔을 들어보이곤 했다. 이 삭막하고 매일이 낭떨어지같은 곳이 고향이라니. 그럴 때마다 내 고향을 떠올렸고 나는 흐뭇해 해며 차곡차곡 쌓여가는 적금통장을 쳐다보는 사람처럼 실실댔다. 나는 모든 것이 불안했고 미래는 커녕 당장 내일도 힘들어했다. 그당시 무척이나 축쳐진 어깨로 교정을 비틀거리던 나를 보고는 친했던 95학번 형이 저녁무렵 나를 포장마차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막막하지?"

 정답이였다. 나는 막막했다. 모든 것이 지겨웠다. 그렇다고 공부는 죽어도 하고싶지 않았다. 말없이 술을 마시던 내게 그 형은 한마디 던져주고 일어섰다.

 "군대나 가 이새꺄!"

 고향집, 할머니 옆에서 미친 듯이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던 귀향 첫 날 나는 영장을 집어들고 조금 운 것도 같다. 귓전을 맴도는 소리. 군대나 가 이새꺄.


회상


그 때 내가 연애를 알았다면, 김훈에게서 위로받고 신경숙에게서 희망을 봤다면, 청량리 후미진 골목 정육점 불빛 안에서 싸구려 성을 사봤다면 그렇게 막막하지는 않았을까. 허무라고 쓰고 눈물로 찢어버리던 그 하루하루들이 내 발목을 잡아 술집을 전전하게 만들게 날 내버려 놓지 않았을까. 나올 것 같은데 나오지 않는 기침이나 트름처럼 이상하게 막혀있던 내 청춘. 그 시절이 지난 후 지금까지 내 청춘은 후련하게 뚫리지 못하고 있다.


아아. 내 청춘.

김영하. 퀴즈쇼. 불안한 청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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