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틈/누군가의 한 소절 (26)
서울남편광주아빠
서울역 그 식당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로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로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신경숙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내면, 욕망, 일상, 여성 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 자신의 존재를 쉬이 드러내지 못하는 미세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 그들의 흔들리는 내면에 대한 섬세한 성찰 등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집 [겨울 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방] [종소리], 장편 [깊은 슬픔] [외딴 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전2권)과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등을..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칼날과 사랑』『유리구두』『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와 장편소설『핏줄』『불꽃』『'79-'80 겨울에서 봄 사이』『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먼길』『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우연』등이 있다. 1995년 『먼 길』로 제2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0년 단편 「개교기념일」로 제 45회 현대문학상 수상 내가 신경숙 작가에게서 김인숙 작가에게로 시선이 옮겨 간 이유는 그다지 크지 않다. 신경숙작가의 『깊은 슬픔』을 읽을 즈음, 나는 애기능생활도서관 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왕자와 더불어 중고생 필독서로 불리는 책이었다. 어느해인가 책을 소개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추천도서로 꼽히는 운으로 대중들에게 더 친숙해진 책이기도 하다. 불규칙한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산성비 뒤집어쓰기 쉽상인 미친 날씨 속에서 난 쉽게 읽을만한 책을 원했다. 지금 읽고 있는 경제서적이나 김훈의 시론집은 땀으로 젖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끈적임을 참아가며 읽어볼만한 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어들었다. 애기능 생활과학도서관의 이 책을. "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야 실망도 안 하거든. 아기 예수도 사람들이나 신부님이나 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애는 아냐" 제제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해하고 있다. 알고 있다라는 것이나 이해하고 있다라는 것이 제제의 나..
--- 김용택 산문집 [오래된 마을] 中에서 학교 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방이 교문 앞 게시판에 붙은 지 3일째다. 오늘은 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지난주에 집에 갈 차비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걸어서 집에가지 가야한다. 길을 자갈길 14킬로다. 날은 더웠다. 길을 나서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바라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굽이굽이 하얗게 멀리 아득하다. 저 멀고 먼 길을 나는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걷자. 하얀 자갈길에 불볕이 이글거리고 길은 팍팍하다. 1킬로도 가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솟고 속옷을 입지 않아서인지 교복이 땀에 젖어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 집에 가봐야 돈이 없을 텐데······. 주저앉고 싶고 학교로 되돌아가고 싶다. 미루나무에 둘러싸인 학교가 멀리 보..
어떤 새는 저녁무렵에 혼자서 바다로 나아간다. 가슴에 석양을 받으며 새는 캄캄해지는 수평선 쪽으로 날아간다. 혼자서 날아가는 새는 저 혼자서 바다 전체를 감당하려는 듯하다. 한 마리의 새는 바다 전체와 대치하고 있다. 한 마리의 개미 역시 그렇다. 개미 한 마리가 땅을 기어갈 때, 그 개미는 홀몸으로 땅 전체와 대치한다. 한 마리의 사슴이나 사자도 그러하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는 저 혼자서 이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한 마리는 외롭고 또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외로움은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혼자일 뿐이라는 운명을 일깨운다. 나는 혼자서 밤바다로 나아가는 새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새 또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