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사실 도쿄가 어떤 도시일지는 가보지 않아서, 상상해보지 않아서, 간접경험조차 없어서 알수가 없었다. 예전 신주쿠의 맥도날드는 이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밑에 서면 2층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일본 여자들의 치마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겐 그처럼 일본은 야동천국, 우익토피아, 전범국가 정도로 남아있다. 동경대가 매우 유명하고 높은 대학순위에 랭크되있다는 사실도 추가하자. 97학번 이대원 선배의 추천으로 그의 외장하드에 있던 흔들리는 도쿄를 보게되었다. 세 명의 명성높다는 감독이 만들어낸 옴니버스형식의 영화. 마지막 스토리가 봉준호감독 연출이었다. 사실 영화를 본 마지막에도 나는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애국적인 요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그래도 봉준호..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 병 ..
--- 김용택 산문집 [오래된 마을] 中에서 학교 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방이 교문 앞 게시판에 붙은 지 3일째다. 오늘은 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지난주에 집에 갈 차비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걸어서 집에가지 가야한다. 길을 자갈길 14킬로다. 날은 더웠다. 길을 나서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바라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굽이굽이 하얗게 멀리 아득하다. 저 멀고 먼 길을 나는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걷자. 하얀 자갈길에 불볕이 이글거리고 길은 팍팍하다. 1킬로도 가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솟고 속옷을 입지 않아서인지 교복이 땀에 젖어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 집에 가봐야 돈이 없을 텐데······. 주저앉고 싶고 학교로 되돌아가고 싶다. 미루나무에 둘러싸인 학교가 멀리 보..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봉두난발로 TV스위치를 켜고 트렁크 팬티를 부비적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하러 내리는 가. 중력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고 땅 바닥으로 머리를 쳐박는 저 어리석은 몸짓. 나는 그 땅에서 뿌리 뽑힌 인생이었다. 누나의 빚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수치였다. 아니. 내가 헤아리면 안되는 숫자들이었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쓰나미처럼 밀려 올라왔다. 계산기의 부품들이 오류를 낸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눌렀다. 4년 전. 나는 밤샘의 시험공부 속에 시력을 잃어가고 책상 구석에 꾸벅꾸벅 이마를 찢고 있었다. 갑자기 어금니에 바늘이 꽃혔다. 2분 간격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꽃히고 나는 몸을 베베 꼬면서 신음했다. 굵은 소금으로..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나는 올라 타자마자 펼쳤고 읽어내려갔다. 날씨는 화창과 꿀꿀의 중간에서 멈춰있었다. 멋있는 녀석. 창 밖에도, 정면의 꽉 막힌 차들도, 기사님의 흥얼거리는 트로트도 모른채 활자에 정신을 모았다. 그의 시론에 빠져갈 때쯤 기사님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어어. 내 참. 저런건 안봐야되. 기사님은 햇빛가리게를 내려서 시야를 막았고 나는 영문없이 정면을 바라봤다.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색 오토바이. 함께 묶여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오른편 시야에서 헬맷을 쓴 사람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의 뒤에는 버스가 멈춰 서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 거리며 갈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저사람 여러번 굴렀어. 살아는 있을랑가 몰라. 에이. 저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