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편광주아빠
첫 째 현준이가 태어났을 때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예 다른 세계가 펼쳐질 줄은 정말 몰랐지. 참. 다만,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가 두렵지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그 시기에는 온전히 현준이에게만 신경을 집중했다. '귀엽다' 혹은 '사랑스럽다' 또는 '예쁘다' 라는 표현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 기간동안 아이는 커갔고 커가며 더욱 더욱 더욱 귀여워졌다. 눈 빛만 보내던 녀석이 날 보고 눈웃음 짓고 옹알이 하던 녀석이 아빠아빠 하고 이제는 '아빠. 너무너무 보고싶었어요!' 라고 말해준다. 아이고. 귀여운 놈 ㅎ 아내와의 결혼 전, 직후의 약속 대로 우리는 둘째를 가졌다. 둘째는 가지고 나서 아내는 자주 ..
아내. 오늘은 아내와 사귄지 2904일 아내와 결혼한 지 1301일 되는 날이다. 주말에 교육을 나와 어제 새로 만든 블로그에 첫 글을 쓰는데 막연하게 아내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보니 아내와 아이들의 '시작'과 연관된 숫자들이 보였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하자. 던 그 때의 아내를 들들 볶아 결혼한지 1301일이나 되었다. 그 때의 아내와 나는 지금의 아내와 내가 될 줄 알았을까? 1300여일 동안 아내는 두 아이를 낳았다. 정확히는 두 아들을. 결혼하고 얼마 안가 첫째를 임신했기에 아내에게 그동안은 아마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로 남아있겠지? 요새는 아내와 있어도 두 아들을 보느라 서로의 생각을 깊에 얘기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그동안은 ..
옥상영화제와 옥상달빛 배우 장진영이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애생관(애기능 생활과학 도서관 : 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옥상영화제를 기획했었다. 장진영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갔고 그 해,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아마 가을이었을 것이다. 낙옆이 바람에 날렸고 코끝에 마른 흙냄새가 올라올 때쯤이었으니. 난 옥상영화제를 여는 팜플릿 첫 장에 이런 글을 써넣었다. 자신없게 흘려 쓴, 오프라인으로 퍼져나간 내 첫 글이 아니었을지. --------------------------------------------------------------------- 옥상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공간입니다. 배우 장진영이 떠나던 날, 저녁 애기능 학생회관 옥상 위로 별 하나가 떴습니다. 가을의..
그날, 내가 목놓아 울었다면, 영정앞에서, 조문객들 맞으며 어디고 기대고 앉아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냈다면 어땠을지. 추운 날 두툼한 작업 점퍼에는 흙먼지가 쌓여있고 방한모자 챙은 때가 껴 반지르르한 수염이 덥수룩한 공사장 인부가 점포 문을열고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내가 그날, 울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찬 바람에 부르튼 손으로 라면과 도시락을 계산하는 어딘가 모르게 눅진한 냄새를 풍기는 그, 사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아버지를 본다. 밥을 먹다가 나는 꺼이꺼이 운다 밥 먹는게 따뜻한 밥 위장속으로 집어넣는 내가 너무 싫어서 너무 죄스러워서 그 사내들 무리속의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고 계신것 같아 밥 못먹고 운다 평생 불효자로 남은 내가 못나서 운다 만일 그때, 내가 목놓아 울었다..
어머님. 지금 아버님 심장이 멎으셨어요~ 위급한 상태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 함께 병원으로 와달라고 간호사가 말했을 때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보일 것도 같고 다시 사라질 것도 같던 아버지의 생을 향한 눈빛들.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후 눈을 뜨셨는지 계속 감고 계셨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환자실앞 의자를 붙여 만든 간이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나는 다만 기다려 달라고 아버지께 얘기했다. 막상 아버지께서 기다려주시면 뭐라 말을 할지, 뭘 해드려야 할지 나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때는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이중문이 열릴 때마다 중환자실 안쪽에 대고 지금은 아니라고, 나 아직 아빠한테 할 말이 많다고 힘껏 소리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날, 자정이 지나고 아버지는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셨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