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틈/사소한 것들 (41)
서울남편광주아빠
균이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 전체에 퍼져 굳은살처럼 박혔다. 각질이 떨어져 나온 자라에서 벌건 핏기가 보였고 갈라진 마디에서 진물이 흘러나왔다. 양발 새끼발가락 사이가 특히 심했고 운신 중간중간 미칠듯한 간지러움으로 몸을 베베 꼬았다. 당장이라도 신발을 벗고 양말을 걷어 벅벅 긁고 싶었다. 긁어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무좀으로 인한 가려움으로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를 긁을 때에는 피가 나게 긁어도 가려움이 가라앉지 않았다. 피가 스며나오는 고통과 해소되지 않는 극한의 간지러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닿아 풀어지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서 가려움이 고통으로 변하고 유혈의 고통이 가려움으로 귀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풋크림을 잔뜩 쳐바르고 곳곳 스며들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마르지 않은 남은 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나오는 티비 드라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밑에서 엄마는 엎드려있었고 작은 숨소리로 보아하니 주무시고 계신 듯 했다. 이불을 베개삼아 다소곳하게 누워서 티비쪽으로 시선을 멈추었다. 내겐 감정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팬티한장만 걸치고 쇼파에 앉아 리모컨을 연신 눌러대고 있는 백수였다. 삶은 양 어깨에 귀신처럼 내려앉아 돌처럼 굳어버렸다. 길을 걷다가도 그 무게의 두려움으로 갑자기 멈춰스곤 했다. 생각없는 시간을 갉아먹다 무릎에 상처를 쳐다봤다. 딱지가 올라앉아 거추장스러운 상처는 세계지도처럼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냈다. 새살이 완전이 돋았는지 딱지는 손이가는 족족 허물처럼 벋겨졌다. 굳은 상처 벋겨내기에 서투를때는 쉽게 피를 보곤 했는데 지겨운 ..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봉두난발로 TV스위치를 켜고 트렁크 팬티를 부비적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하러 내리는 가. 중력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고 땅 바닥으로 머리를 쳐박는 저 어리석은 몸짓. 나는 그 땅에서 뿌리 뽑힌 인생이었다. 누나의 빚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수치였다. 아니. 내가 헤아리면 안되는 숫자들이었다. 갑자기 4년 전 치통이 쓰나미처럼 밀려 올라왔다. 계산기의 부품들이 오류를 낸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눌렀다. 4년 전. 나는 밤샘의 시험공부 속에 시력을 잃어가고 책상 구석에 꾸벅꾸벅 이마를 찢고 있었다. 갑자기 어금니에 바늘이 꽃혔다. 2분 간격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꽃히고 나는 몸을 베베 꼬면서 신음했다. 굵은 소금으로..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나는 올라 타자마자 펼쳤고 읽어내려갔다. 날씨는 화창과 꿀꿀의 중간에서 멈춰있었다. 멋있는 녀석. 창 밖에도, 정면의 꽉 막힌 차들도, 기사님의 흥얼거리는 트로트도 모른채 활자에 정신을 모았다. 그의 시론에 빠져갈 때쯤 기사님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어어. 내 참. 저런건 안봐야되. 기사님은 햇빛가리게를 내려서 시야를 막았고 나는 영문없이 정면을 바라봤다.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색 오토바이. 함께 묶여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오른편 시야에서 헬맷을 쓴 사람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의 뒤에는 버스가 멈춰 서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 거리며 갈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저사람 여러번 굴렀어. 살아는 있을랑가 몰라. 에이. 저런건..
사랑한다고 말해봤니 네 그 사람이 널 사랑한다고 말했니 아니오 너의 사랑은 계속될 것 같니 네 그사람이 널 사랑할것같긴 하니 아니오 니 사랑은 언제까지니 그건. 예 아니오로 말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
학교 앞에 김밥천국에서 시킨 2500원 짜리 라면에는 가운데에 가지런하게 콩나물이 올라앉아있었다 젓가락을 들어 그녀석들을 곱게 펼쳐서 국물에 푹 담근다음에 면발이랑 같이 섞어잡아서 한입 후룩 넘기면 시험공부로 지친 마음도 따뜻해지는 듯 했다 막 복학을 했을때 이놈은 내 둘도없는 친구였다 군제대 후 정신이상으로 소심함을 과식했던 터라 발맞출 사람이 없어서 혼자 끼니를 연명해야했던 그때 발그레한 눈웃음치며 나를 반겨준 녀석이었다 먹고나서 부리는 심술덕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려야 했지만 뜨거운 연기로 내 시야를 흐려주어 꾹꾹 눌러나오는 슬픔도 다 가려주었던. 낮잠을 늦게까지 자다가 얻은 말짱한 정신덕에 집앞 김밥천국에서 너를 만났건만 예전같지 않은 맛에 참 오랜만에 너를 찾은 나에대한 불만이려니. 생각해본다...
"그남자네 집"을 읽다 문득 생각이 납니다. 바보같이 멍렁하게 내가 사랑한 사람이 누군가. 붉어진 내 사람이 누군가.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이구나 밝아진 하늘을 보며 아. 오늘이구나 조그마한 기억속에 방을 꾸민 그대에게 아. 어지럽구나 그렇게 적은 술에 감정을 녹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전하겠지만 난 술을 계속해서 마실거에요 이유는 묻지 말아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거든요 과학도로서. 그러나. 보고는 싶습니다. 하루가 미로같은 삶의 구덩이속으로 내 마음은 붉어집니다.
사나워 보이는 고무끈으로 자신이 묶어놓은 강아지 한마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며 거친말을 내뱉는 야영장 아저씨를 보며 그랬다 저럴거면 왜 데리고 있지? 하지만 헐크같던 그 사람은 잠시후 고무채찍을 내리치던 그 손으로 하얀 비누거품을 만들며 자신의 강아지를 이곳저곳 구석구석 씻겨 주었다. 사람의 소유는 단순히 자기것이라는 의미밖에 없는걸까. 내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소유물의 의미가 소멸된다면 소유의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없어지면 또 울고불고 벽보 덕지덕지 붙여가며 찾아다니겠지. 소유물의 뒤바뀜 내가 무엇인가를 소유한 주인이 아니라 우린 좋은 시간을 함께한 단순한 친구일뿐 안그래? 사랑도 마찬가지야.
미련이 남았다면 아마 그건 지워지지 않을겁니다. 그건 내가 어머님의 작은방에서 태어나 엉덩이 맞아가며 내질렀던 울음과 같거든요 좋아하는 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미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처럼 사랑했다는 감정이 쓱싹쓱싹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미련은 저금통 마지막 10원짜리처럼 내 밖으로 밀어내가 쉽지 않은 놈이지요 그에게 혹 그녀에게 미련이 있다면 애기 하세요. 내 미련으로 당신이 아직 내 안에 있다고. 그러면 미련은 추억이 될겁니다. 추억은 지우지 않아도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