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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편광주아빠
무소유의 진리를 설파하시며 불교계 성인이셨던 법정스님이 지난 3월 입적하셨다. 나에게 큰 감흥은 없었다. 불일암에서 수도하시고 길상사 주지스님이셨다는 사실과 많은 책을 펴내셨다는 것은 흘러가는 말로 들어 알고 있었다. 불교계는 성철스님 입적 이후 가장 큰 이슈로 다루며 연일 법정스님의 그간 행적과 스님의 법문을 방송하며 추모의 뜻을 보였다. 공중파에서도 법정스님의 과거 방송내용 등을 짜깁기한 준비된 영상을 내보냈고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고난했던 과거와 중생들을 위한 잠언을 보고 들으며 감동했다. 나도 그 중 한 프로그램을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나는 늘 많은 돈을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왔다.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와 술을 사달라며 칭얼댈 때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정도 - 약 삼만원 가량..
성장소설을 좋아했다. 어느날엔가는 황석영작가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고나서 깊게 감동했었다. 박완서작가의 [그남자네집]도 사실 작가의 경험이라고 봐야 했기에 성장소설과 비슷한 류였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검은 구름이 심장을 가리는 것마냥 답답하고 초조했던 신경숙작가의 [외딴방] 역시 그녀의 과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마지막 장까지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상처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의 과거를 글로써 고백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 역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야 읽어줄 만한 글이 나온다는 애기를 듣고 내 가난했던 청춘을 옮겨 적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늘 웃음을 달고 다녔지만 가슴 한 켠에 시퍼런 칼날을 숨기고 다니던 그 시절의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
한 때, 시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한 곳만 보고 경쟁하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훗날 문학 소년으로 남고 싶어 늦은 저녁 학교 건물 5층 도서관 구석에서 좋아하던 시들을 필사했다. 스프링 연습장을 사고 예쁜 색연필이나 꾸미기 좋은 펜들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나면 종종 예쁘게 시를 적었다. 가끔 너무 자주 했다 싶은 축구가 술 취한 다음날의 반찬 처럼 텁텁해질 때, 교정 계단에 앉아 시를 소리내어 읽었다. 나는 내가 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시를 알고 있다는 말이 무척 건방져 보이지만 당시 시는 다른 아이들과 나를 구별지어주는 하나의 선이었다. 굵고 커서 넘볼 수 없이 견고한. 나는 아무에게도 시를 알고 있다고, 가끔이지만 쓰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써놓고 ..
집으로 돌아와 늘 그랬던 것 처럼 바지를 벗고 빤쓰만 입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 갠 뒤라 날씨는 맑았고 볕은 따뜻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냄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는 엄마가 해오던 부업 일감들이 난수처럼 어질러져있고 그리고 천정. 천정에는 날지 못하는 돌고래 한마리가 며칠째 그 자리에 떠있다. 코를 천정쪽으로 세우고 꼬리는 쇼파쪽으로 내린 파란 돌고래. 얼마전 조카와 나들이 갔던 어린이대공원에서 조카 손에 쥐어준 오천원짜리 돌고래. 녀석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새 공기들이 몸에서 많이 빠져나간 듯 꼬리부터 배 밑까지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있다. 날지못하는 돌고래..
모두들 집으로 가버리고 나는 만지작 거릴 전화기도 없었다. 제도권을 저 혼자 뛰쳐나온 것 같은 무한자유와 넘치는 해방감으로 나는 한달만에 20만원이 넘는 통화를 해댔고 결국 어머니께 핸드폰을 압수당한 상태였다. 3월 말, 나는 역시나 늦은 달빛을 핑계삼아 집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그것말고도 핑계는 많았지만 분무처럼 뿌려진 달무리를 등지고선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장승앞에 서서 동기들을 부르고 싶었다. 터벅터벅 과방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울컥울컥 터지는 외로움에 늑골이 시려왔다. 하나의 무리에 속하지 못했던 나는 그 시절 본의 아니게 아웃사이더처럼 캠퍼스 언저리를 맴돌았고 날이 저물어 지칠 즈음 늘 과방에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숨가쁜 적막 속에서 과방문을 살짝 열..
빈방이 하나 있다. 다섯 식구 사는 집에, 그것도 가장 넓은 큰방이 사람하나 들이지 않은채 비어있다. 비우고 싶었던 것 도 아니었고 원래 비워져 있던 것 도 아닌데 그 방은 그렇게 비어있다. 그방의 주인은 진짜 우리 아빠였을까. 그 방의 주인은 그 방에서 한번도 주인행세하지 못했다. 늘 천정만 보고 있었고 빛을 보려고 혼자서 일어나 커튼을 치지도 못했다. 독립난방이 되는 요즈음, 따뜻한 거실과는 달리 그 방에는 온기하나 없다. 꽃피는 춘삼월이라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추위 속에서 그 방은 창문을 닫아놓아도 열린것 처럼 추웠다. 아버지는 그 가운데서 2년을 누워계셨다. 진정 아빠가 그 방의 주인이었을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무릎을 꿇고 아빠가 계셨던..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때린다 아빠를 때릴 때 내 손에는 우주의 기가 장전됐다 아구창을 날리던 그 때의 기억을 충분히 발라 허벅지에 엉덩이에 뺨에 가슴팍에 꽂을 때마다 신음했다 아빠는 좋아죽는 투로 아빠를 때린 것처럼 엄마를 때리고 싶었고 엄마를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누나를 때렸다 잠만자는 형에게도 날리고 싶은 마음은 아무려나 내게로 돌아왔다 때린다 나는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책밖으로 진리는 걸어나오지 않고 밤은 쉬이 아침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기다린적 없는 서른의 끓는 피가 식어 밥상앞에 묵사발로 올라올 때 나는 다시 내출혈의 아픔으로 뇌출혈의 아버지를 때린다 말라버린 거실의 나무들을 씹어먹으며 나는 도통 일어서질 않는 세월로 잠식된 아빠는 퀘퀘한 냄새로 하나의 별이 되고싶었을까 도망치는 나를 ..
혼자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음을 즐기고 혼자 밥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가는 시간시간을 혼자 향유하고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면서 죽을 때까지 기억나지 않는 누구와 본적없는 풍경과 쉬지않은 공기와 맡지 않은 향기들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혼자 있을 때 누구에게라도 섬광처럼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도 기다림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기다림은 늘 외로움을 달고 온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 노을이 자리잡고 나면 나는 늘 철봉에서 내려와 집으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집까지 향한 길은 갈래길 없는 외길이었다. 길 양 옆으로 누런 벼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빛들을 뿌려댈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다..
오늘 부산의 낮 기온이 2월 하순 기온관측사상 처음으로 20도를 넘어섰습니다. 오늘 낮은 전국 곳곳에 이상고온현상이 나타났는데요. 서울역시 관측사상 처음으로 2월 하순 기온이 15도를 넘어서는 등 초여름 날씨처럼 후텁지근한 햇볕으로 시민들은 더위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상고온현상은 내일 서울을 포함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한 풀 꺾이겠습니다. 자세한 날씨소식에 OOO기잡니다. 이상한 꿈에서 깬 후 나는 0.5초도 되지 않아 정신이 말짱해졌다. 이상한 꿈이었다. 누군가가 코풀듯 신춘문예에 당선되버리고는 살짝 올린 입꼬리로 내 앞에서 그 사실을 토해내는 장면이 꿈을 깨고나서도 환영처럼 천정에 펼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급한 마음에 꿈을 잇고 싶어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정확히 1분 뒤 몇발자국..
매일 울고 매번 웃는 시간들 속에서 감정이 점점 소진되고 있다. 오랜만에 상경한 대학 동기녀석은 그의 팔짱을 낀 폴랑거리는 여자친구를 달고 나타났다. 실실대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연애가 녀석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지 전체적으로 편안한 모습이었다. 날은 맑아 하늘에 구름한점 없었으며, 시원한 바람 속에 검은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유난히 별이 잘 보이는 저녁이었다. 한참동안 자리에 서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곁으로 그녀석이 다가왔다. 녀석의 여자친구와. "뭐해?" "그냥." 술을 마셨다. 간만에 들른 휘모리에서 늘 마셨던 사과소주와 늘 먹었던 모듬꼬치를 시켜놓고 녀석과 녀석의 여자친구와 마주앉아 그간 녀석의 연애담과 앞으로의 계획과 서울로 올라온 오늘 하루동안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들으며..